트래블 버킷리스트_part 2. 울산

내 운명의 지축을 돌려놓은 ‘옹기’ 이야기

허진규 옹기장이 빚은 옹기는 대를 물려 쓰는 명품이 된다. 3대에 걸쳐 물려주고 물려주며 깊은 장맛을
내고, 술맛을 일으키는 숨 쉬는 항아리. 울주가 낳고 울주가 길러 이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옹기 장인은 고작 14세 나이에 ‘평생 옹기를 하겠노라’ 부모를 설득했단다.

“좋아하는 것을 잘하려면 후회는 해도 포기는 안돼.” 울산 울주군, 외고산옹기마을

옹기를 빚는 장인, 명인이라고 하여 하얀 수염을 가진 신령님 같은 분을 상상했는데 건장한 체격에 소탈한 웃음이 청년 같은 분이다. 허진규 옹기장인이 나고 자란 울주는 흙, 땔감, 시장, 한 가지 덧붙여 기온이 온화하여 옹기가 발달하는 데 좋은 조건을 갖추었다. 어린 시절부터 옹기 스승이 되는 어르신들의 일과 삶을 가까이 지켜본 아이는 ‘나도 저분들처럼 살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명인으로 거듭나는 길에 후회가 왜 없었겠느냐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포기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어른이 되었으나 여전히 갈 길을 헤매는,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으나 고민이 많은 이에게 허진규 명인과의 유익한 대화를 공유한다.

허진규 옹기장(2019 지역명사 선정 / 울산시무형문화재 제4호)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한 ‘2019 지역명사 선정사업’은 전국 각 시·도 및 전문가들로부터 24명을 추천받아 서류심사와 현장실사를 거쳐 진행되었으며, 허진규 옹기장을 포함한 6명이 지역명사로 최종 선정됐다.

중2 때 진로를 정하고 지금까지 한길을 가고 계신데 계기나 비결은 무엇인가요?
제가 대학에서 도예를 가르치는데 모든 학생이 적성에 맞아하면서 도예를 하는 건 아니더라고요. 배움 전에 목표를 먼저 설정해야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봐요. 우리 마을은 예로부터 ‘옹기’가 유명했고 제 주변 어르신들이 모두 옹기를 하셨어요. 왜 어릴 때 사물을 보면 참 커 보이잖아요. 저는 큰 항아리를 만드는 어른들이 위대해 보였어요. 이미 초등학생 때부터 나도 저 분들처럼 되어야지. 그런 목표가 있었어요. 흙을 만지는 어른들은 저마다의 고집이 있었지만 다들 순수하셨어요. 제게도 참 따뜻해서 어린 제가 감히 옹기를 하겠노라 꿈을 꿀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명인이 되었지만 만족할 만한 경지에 오르기까지 화도 나고, 좌절하는 때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때마다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옹기 만드는 일은 체력적으로 참 힘들어요.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 맥이 끊길 정도로 힘든 일이에요. 종일 물레를 돌려야 해서 30대에 무릎에 퇴행성 관절염이 왔을 정도거든요. 너무 힘들어서 후회한 적도 많았죠. 그런데 그냥 하는 거예요. 다른 방법이 없어요. 그냥 하다 보면 돼요. 옹기는 저처럼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하거나 10대 후반, 20대 초반부터 시작해야 늦지 않아요. 발레처럼 옹기를 하는 데도 특별한 근육이 쓰이거든요. 뼈가 굳기 전에 배우는 것이 좋죠.

벽에 붙여놓은 글귀가 인상적이에요. ‘익숙한 것에서 새것을 건져올려라’는 어떤 의미인가요? 앞으로의 목표는 또 무엇인가요?
무형문화재로서 저는 전통 작업을 계승해야 하는 의무가 있어요. 후대에 우리가 물려줘야 할 부분이죠. 전통은 무엇인가요? 그 시대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내는 게 전통이죠. 2020년에 만든 저의 옹기가 전통이 될 수 있는 이유예요. 한동안은 옹기를 벗어나 오직 새로움만 추구했어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익숙한 것에서 새것을 건져올려라’, 이 글귀에 답이 있었어요. 내가 하고 있는, 익숙한 전통 옹기에 새로운 무언가가 많이 있더라고요. 제가 찾은 답을 하나씩하나씩 만들어 세상에 보이는 것이 오늘, 앞으로 제가 할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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