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 미슐랭_ 충북 제천 ‘약이 되는 채소의 즐거움’

사람에 대한 사랑과
음식에 대한 고찰이 약채락

눈에서 하트를 쏠 수 있다면 100개는 흘리고 왔을 것이다. 당귀, 민들레, 땅두릅, 잔대, 숙지황,
천궁, 당귀, 백작약, 백복령, 감초, 백출, 인삼…. 우리 것의 고유한 향은 산 같고 들 같다. 우리의
토대가 되는 것에서 온 식재료란 냄새만 맡아도 행복을 전하기에 충분하다.

정상미 사진 문덕관

왜인지 느낌이 좋아, 제천 가는 길
앗. 눈부셔! 한강 위 63스퀘어가 햇빛에 부서진다. 구름에 닿을 듯 롯데월드타워가 이에 뒤질세라 자태를 뽐낸다. 날씨 한번 좋다. 드라이브하듯 한강의 대교들을 넘고 넘어 충북 제천으로 향한다. 제천은 어떤 도시인가. 겨울에는 기온이 뚝 떨어져 제베리아(제천+시베리아)로 불릴 만큼 춥다. 지형적으로 중부 내륙의 해발 고도가 높은 산간 지역에 위치해 충북의 다른 지역보다도 한서의 차가 큰 대륙성 기후가 두드러지는 것인데, 덕분에 전국 평균 강수량보다 많은 비가 내린다. 식물 자원의 종류가 다양하고 우수한 환경적 토대가 갖춰진 것이다. 제천은 조선 3대 약령시장 중 하나로 현재도 그 문화유산을 전승하는 콘텐츠를 잘 활용하고 있다.

언젠가 제천에 들렀을 때 ‘약채락’에 대해 알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하마터면 춥기만 한 도시로 제천을 기억할 뻔했다. 어느 도시의 이른 봄소식은 정말 다른 나라 이야기 같던 날, 바드득 얼어가는 손가락에 입김을 불어가며 ‘약채락’ 인증 식당에 들어섰을 때 코가 먼저 맛있는 맛을 감지했다. 약채락이란 ‘약이 되는 채소의 즐거움’을 뜻하는 말로 재천시가 인증한 지정 음식점에서 사용한다. 시에서는 엄정한 심사 기준을 거쳐 ‘약채락’ 음식점을 선정한다. 특히 문 앞에 ‘약채락’ 브랜드를 당당히 내건 식당들은 그저 혀가 즐거운 1차원적인 맛을 선보이지 않는다. 내 몸에 들어가 약이 되는 음식, 당연한 믿음과 기대를 안고 다시 제천을 온 이유다. 그러니 여러분도 제천에 왔다면 꼭 들러보시길. 약채락 음식점에!

“어서 오세요!”
오늘은 왠지 좋은 사람을 만날 것 같더라니, 열두달밥상의 김영미 사장님이 그분이었다. 식당 앞에는 큰 장독대가 세워져 있고, 엄청난 규모의 텃밭도 보인다. 시내에서 한참 떨어져 있지만 소문난 맛집으로 다들 잘 찾아온다. 진한 햇살에 손 그늘을 하고 바라보자니 건물 위 플래카드가 자랑스럽게 나부낀다. ‘2019 KOREA 월드푸드 챔피언십 대상 수상’, ‘2019 전주비빔밥축제 열두달밥상 김영미 대표 제11회 전국요리경연대회 금상 수상!’ 떡에 한과에 폐백까지 사장님 손맛은 장르 불문이다. 테이블 위에는 요리의 재료가 되는 한약재부터 당귀, 흰 민들레, 잔대, 땅두릅이 소쿠리에 담겨 있다. 눈에서 하트를 쏠 수 있다면 100개는 흘리고 왔을 것이다.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아 보니 고유한 향이 산 같고 들 같다. ‘우리 몸에는 우리 것’이 좋은 건 우리가 거기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토대가 되는 것에서 온 식재료란 냄새만 맡아도 행복을 전하기에 충분하다.

“이건 잔대, 이건 흰 민들레. 이건 땅두릅인데 한의학에서는 독활로도 불러요. 이건 당귀예요. 참 크지요? 당귀가 이맘때면 쑥쑥 자라거든요. 옆에 둔 것이 바로 이 당귀의 어린잎을 말린 거예요. 이것으로 나물 요리를 해요. 예전에는 산에서 당귀를 구했는데 대표적인 약용 식물이다 보니 요새는 재배도 많이 해요. 덕분에 주변에서 구하기 쉽답니다.”

우리 땅에서 자란 약초의 힘, 그 맛
한약을 지을 때 당귀는 빼놓지 않고 들어가는 기본 중의 기본 재료였다. 그런 당귀로 무친 나물은 쓴맛과는 정반대. 당귀가 그간 서운했다고 말할 것 같은 맛이다. 흰 민들레의 존재도 당귀만큼 놀랍다. 길을 걷다 보면 흔히 마주하는 꽃이 민들레인데 음식으로 쓰일 수 있다니 세상은 알아갈 것 천지다. 민들레는 순우리말로 <동의보감>에는 ‘안 방이(앉은뱅이)’나 ‘므은드레’라는 한글 이름으로도 불리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자로는 ‘부들 포(蒲)’, ‘공변될 공(公)’, ‘꽃부리 영(英)’ 자를 써서 포공영이라고 한다. 한의학에서는 말린 민들레와 꽃 피기 전의 민들레 줄기, 뿌리를 이용해 약으로 쓰기도 한다.

“민들레의 이파리를 잘 말려서 솥에 넣고 밥을 지어요. 아이들도 잘 먹을 만큼 쓴맛이 없어요. 민들레는 해독작용과 염증억제에 효능이 있다고 해서 다양한 곳에 활용해요. 흰 민들레가 우리나라 토종 꽃으로 노란 것보다 약으로서 효능이 더 있다는 말도 있지만, 학계와 전문가들은 딱 그렇게 구분 짓고 있지 않아요.”
건강을 지나치게 염려하다 보면 생각이 ‘건강’에만 쏠린다. 건강한 데도 건강을 즐길 수 없어 진실도 외면하기 일쑤. 흰색이든 노란색이든 오랜 세월 우리나라에서 뿌리내린 민들레는 믿는 대로 약이 되어줄 것이다.
“이건 뭐예요? 뿌리도 먹나요?”


김영미 사장님이 잔대를 들어 보인다. 뿌리가 정말이지 산삼 같다. 아닌 게 아니라 일본에서는 잔대를 사삼이라고 부른단다. 유효 성분 중 하나가 사포닌의 일종을 함유한다고. “이 잔대로는 겉절이를 할 거예요. 양념 넣고 쓱쓱 비빈 잔대 겉절이랑 밥만 먹어도 맛있어요.” 약초로 겉절이를 하다니, 기자의 눈이 커졌다. 더군다나 뿌리만을 이용해 무침도 한다. “뿌리만 먹으면 아무래도 조금 씁쓸한 맛이 있지만 잔대는 원래 나물로도 흔히 먹는 식물이에요. 이 뿌리는 구워 먹을 수도 있고 약효가 뛰어나서 약재로도 쓰고요.”
잔대 겉절이와 가장 비슷한 맛을 찾아 보니 갓김치가 떠올랐다. 양념을 했어도 갓김치를 먹으면 특유의 감칠맛과 속이 화~ 해지는 청량감이 있는데 잔대 겉절이가 그러했다. 코끝에 감도는 향과 쌉쌀한 맛이 매력적이다. 사장님의 말처럼 잔대 무침은 더덕 무침과 생김이 비슷한데 그보다 진한 향이 덜하고 굉장히 부드럽다. 잘근잘근 씹을 때 입에 퍼지는 은은한 단맛과 사각이는 식감이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잔대의 매력을 전한다.

숙지황, 천궁, 당귀, 백작약, 백복령, 감초, 백출, 인삼을 우려 밥물을 맞춘다. 여자에게 좋고, 남자에게 좋은 한약재만 엄선해서 지은 ‘약 밥’. 그럼 아이들은? 설탕도 없이 깊은 단맛을 품은 밥은 어린이 손님도 참 좋아한다. 마침 기자가 열두달밥상을 찾은 날은 매주 정기 휴무일인 화요일로 사장님과 앉아 풍성한 한 끼를 나눴다. 이로움이 내 안에 꽉 들어차 뒤뚱뒤뚱 걷고 싶은 기분이다. 사장님이 들려주신 ‘막 넣어도 맛있는 요리가 되는 약채락 황기막간장’을 품에 들고 집에서 요리라고 할 수도 없는 요리를 했는데 참 이름 잘 지었다. 말하는 대로다. 간장 한 스푼에 사람에 대한 사랑과 음식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음을 이제 알겠다.


제천 약채락  https://tour.jecheon.go.kr
열두달밥상  충북 제천시 백운면 금봉로 161 043-643-0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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