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 버킷리스트_여주

우리는 씨앗, 무엇이 될지 알 수 없는 미지의 별

여행은 무엇인가? 종종 생각한다. 여행이 무엇인데 그것을 취미로 삼고, 직업으로 삼고, 꿈으로 삼는가? 경기도 여주에서 나름 그 해답을 얻었다. 여행이란, 여유가 있어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무리하지 않아도, 멀리 가지 않아도 여행은 이뤄지고 충분히 족하다.

정상미 사진 이효태

당남리섬에 유채꽃이 활짝, 꿀벌의 축제가 한창이다

 

◊물과 숲의 도시 여주의 여가 생활

꿀벌이 축제를 여는 당남리섬

축구경기장의 20배 크기에 달하는 경기도 여주 당남리섬

“이 소리 들으셨어요? 이 안에 꿀벌이 엄청나요!” 축구경기장의 20배 크기에 달하는 경기도 여주 당남리섬은 지금 유채꽃 축제가 열렸다. 우리 사람 말고, 벌들을 위한 축제가! 레몬 색깔 같기도 하고, 새싹의 연둣빛 같기도 한 유채꽃은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한데 꿀벌에게는 오죽할까. 거대한 꽃밭 안에 벌들의 윙윙 소리가 드론을 날리는 소리만큼 우렁차다. 당남리섬에는 이포보와 하천 변을 따라 오토캠핑장도 드넓게 조성되어 여가를 즐기기에 그만이다. 텐트는 물론 캐러밴까지, 이미 명소로 소문이 났는지 주말을 찾아 여가를 즐기러 온 시민들도 눈에 띈다. 혹시 그 영상을 보신 적이 있는가? 지난 4월 경기도 여주시 공무원들이, 순전히 여주 특산물인 ‘고구마’를 제대로 홍보하고자 만든 영상이 큰 화제를 일으켰다. 한류스타 ‘방탄소년단(BTS)’의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한 영상은 유튜브 조회수 46만(5월 20일 기준)을 기록했다. 기대 이상(?)의 촬영기법과 묘사에 감탄한 댓글도 재미있다. ‘여주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그들(여주시 공무원)은 2050년에서 온 BTS다’ 등등. 그 영상을 보니 고구마보다도 영상의 주된 무대인 당남리섬이 너무 궁금해지는 것 아닌가. 홍보, 제대로 성공했다.

파사산은 해발 230m의 야산으로 능선을 따라 축조된 삼국시대 석축 산성이 남아 있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걷다 보니 눈앞에 이포보가 드러난다. 이포보는 여주시의 새인 ‘백로’와 생명을 품은 ‘알’을 형상화했다. 마치 그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백로가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장면을 보았다. 군살이 박힌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 걸으니 소소한 행복이 찾아온다. 이포보 동쪽으로 보이는 파사산은 해발 230m의 야산으로 능선을 따라 축조된 삼국시대 석축 산성이 남아 있다. 현대에 지어진 이포보와 파사산성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포대교는 조선시대 4대 나루터였던 이포나루가 있던 자리다. 전국의 물산이 모여들며 중요한 나루터 역할을 한 이포나루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이포대교와 이포보가 그를 대신하듯 시민들의 삶에 가까이 있다. 여주는 예로부터 임금님에게 진상되는 쌀을 생산했다. 물길을 만들고, 물을 가두고, 물을 이용하는 방법을 여주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포보는 ‘보’의 역할은 물론 하천 변을 따라 캠핑장, 생태공원, 수변공원을 조성하여 생활친화적인 공간의 역할도 하고 있다. 이포대교는 오늘날 여주와 이천을 이어주는 이포나루의 재탄생이다.

 

여주 황포돛배를 타고 신륵사로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는 틀렸으면 좋겠는데 여지없이 들어맞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한낮, 두 청년이 강변유원지의 금은모래캠핑장에서 준비해온 요리 재료를 씻고 그들의 텐트로 향해간다. 분명 비를 맞아가며 텐트를 쳤을 텐데 무엇이 대수랴. 이제 즐길 일만 남았다. 박민수 씨와 이정훈 씨는 친구 사이로 회사에 휴가를 내고 캠핑을 즐기러 나왔다.
“바쁜 서울의 삶에 지칠 때가 있는데 이렇게 캠핑을 나오면 저절로 힐링이 돼요. 여기에 있으면 서울에서 멀리 안 갔는데도 속세로부터 멀어진 아득한 기분이 들어서 좋아요.”

금은모래캠핑장에서 만난 박민수 씨와 이정훈 씨

한 시간이면 여주에서 서울에 닿는데도 이곳에서 보내는 휴식은 속세를 떠나온 것처럼 깊고 진한가 보다. 다시 돌아간 일상에서 여주를 생각하면 나뭇잎을 적시던 빗방울, 그 비를 맞고 요리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리라. 어떤 요리를 만드는 걸까 몹시 궁금했지만 그들의 시간을 더 방해하지 않기로 한다. 강변길을 따라 여주의 상징인 ‘황포돛배’ 모형이 눈에 띈다. 황포돛배는 바람의 힘으로 사람과 물자를 수송했던 배다. 여주는 국토의 대동맥을 연결하는 한강 상류 지류인 남한강을 끼고 있는 고장으로 물자교역이 번성했다. 실제로 남한강을 따라 황포돛배(세종대왕호)가 운영되는데 물자와 사람을 싣고 나루와 나루를 오고 갔던 황포돛배를 타고 신륵사, 영월루, 세종대왕영릉을 유람할 수 있다. 남한강 변의 절벽에 신륵사의 강월헌이 수묵담채화처럼 은은하고 아스라하다. 신륵사는 남한강의 안정을 위해 강 옆에 조성된 것으로 전해지는 천년고찰이다. 1469년 세종대왕릉이 여주로 천장되며 신륵사는 영릉을 보호하는 원찰(죽은 이의 명복을 비는 법당)로서 이름을 알렸다. 덕분에 경내의 주된 불전은 대웅전이 아니라 죽은 사람의 극락왕생을 비는 극락보전(경기도유형문화재 제128호)이며, 보제존자석종, 석종비(각각 보물 제228호, 제229호) 등의 유물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강 너머에서 바라봤던 경내의 강월헌에는 삼삼오오 사람들이 앉아 옛사람이 그러했던 것처럼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

신륵사의 강월헌은 나옹의 다비 장소로서 생전의 당호를 따라 강월헌이라고 이름했다

고려 말의 고승 나옹(1320~1376)은 지공, 무학대사와 함께 불교 3대 화상으로 고려말 왕사이자, 조선 건국에 기여한 무학대사의 스승이다. 법명은 혜근, 법호는 나옹, 당호는 강월헌이다. 신륵사의 강월헌은 나옹의 다비 장소로서 생전의 당호를 따라 강월헌이라고 이름했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강월헌은 1972년 홍수로 떠내려간 건물 대신 1974년 철근과 콘크리트로 2층의 정자를 새로 지어 올린 것이다. 그럼에도 여주의 남한강 가에서 고고하고 신비한 빛을 그리는 강월헌의 존재는 묵직하다.

 

◊왕의 도시, 여주 성군의 가르침을 담다

밤낮없이 지켜주리, 빛나는 사람이 되도록

어진 임금은 그러셨을 것 같다. 밤낮없이 백성을 잘 먹이고, 입히고, 쑥쑥 크게 하려는 마음에 잠도 못 이루지 않았을까. 세종대왕은 혼천의, 물시계, 해시계,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국가 제례에 사용하는 아악을 정리했다. 효종대왕은 재위 10년 동안 전란으로 피폐해진 민란을 복구하고자 군사 훈련을 강화했으며, 경제적으로는 대동법을 실시하고 상평통보를 널리 쓰이게 했다. 촉촉한 비를 머금어 싱그러움이 영근 왕의 숲길을 따라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를 모신 영릉(英陵), 효종대왕과 인선왕후를 모신 영릉(寧陵)에 들어선다.

영릉(英陵·세종과 소헌왕후의 능)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는 하나의 봉분에 모셔져 있다. 조선왕릉 가운데 처음 만들어진 합장릉이다. ‘혼이 머문다’는 뜻의 혼유석은 두 개다. 원래 세종대왕릉은 서울의 헌릉 서쪽에 자리했는데, 왕이 죽고 19년이라는 시간에 문종, 단종, 세조, 예종 등 왕이 네 번이나 바뀌고 세조와 예종의 장남이 일찍 요절하자 세종대왕의 천장이 결정되어 지금의 자리에 옮겨왔다. 성스럽기까지 한 완만한 곡선 위에 왕이 잠들어 있다. 거대한 문신상과 무신상이 왕과 왕비를 호위하고 호랑이와 양의 석수가 영릉을 수호하고 있다. 세종대왕릉은 최근 2년 반 동안 관람을 제한하다 지난 5월 16일 세종대왕릉의 능침과 제향 공간, 옆 효종릉으로 이어지는 왕의 숲길 구간을 개방했다.

영릉(寧陵·효종과 인선왕후의 능)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세종대왕유적관리소는 1970년대 성역화 사업의 잘못된 부분을 발굴을 통해 두 영릉의 옛 모습을 되찾고자, 2017년 4월 ‘영·영릉(英·寧陵) 유적 종합정비사업’을 시작했으며 앞으로 7월 1일, 10월 9일에 걸쳐 순차별로 관람을 재개할 예정이다. 사업 기간에는 예전 방문했을 때와 관람 동선 등이 일부 달라질 수도 있으니 참고하자. 영릉과 함께 매표소 옆에 자리한 세종대왕역사문화관은 관람 전이나 후에 꼭 한 번 들렀으면 좋겠다. 세종대왕과 효종대왕의 일대기와 업적을 실물과 디지털로 구현한 영상으로 만날 수 있는데, 어른은 물론 어린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해설과 비주얼이 소통하니 가히 세종대왕역사문화관답다.

여주 영릉(英陵·세종과 소헌왕후의 능)과 영릉(寧陵·효종과 인선왕후의 능)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2009.6.30
영릉(英陵)은 조선 제4대 세종(1397~1450, 재위 1418~1450)과 소헌왕후(1395~1446)의 능으로 1469년 여주로 천장할 때 봉분 내부를 석실에서 회격으로 바꾸어 조성하고, 석물 중 망주석, 장명등, 석수, 석인은 단릉처럼 배치했으나 혼유석만 두 개 설치하여 합장릉임을 나타냈다.
영릉(寧陵)은 조선 제17대 효종(1619~1659, 재위 1649~1659)과 인선왕후(1618~1674)의 능으로 병풍석에 틈이 생기는 문제가 일어나자 1673년 여주로 천장했다. 왕의 무덤에만 곡장을 둘러 왕후의 무덤과 구별했고 나머지 석물의 배치와 규모는 동일하게 갖추고 있다.

 

◊행복한 사람들의 도시 여주가 빛나는 이유

편안한 강천, 그리고 여백서원

여주는 8개 면, 3개 동, 1개 읍의 행정구역으로 이뤄진다. 여주시의 중심인 시청을 기준으로 능서면의 세종대왕릉은 차로 약 5분, 금사면의 이포보까지는 차로 20분, 쇼핑 하면 떠오르는 여주 프리미엄 아울렛은 10분이면 닿는다. 또 하나 강천섬(유원지)이 자리한 강천면도 빼놓으면 섭하다. 이곳 역시 차로 15분 정도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여주로 여행을 계획한다면 하루의 시간에도 쇼핑, 역사, 문화, 여가, 맛까지 능서면, 금사면, 강천면을 오고 가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취향은 좀 달라’ 오늘 여행은 쉬는 것에 치중하고 싶다면, 무엇 하나 챙길 필요도 없이 강천섬으로 가보길 권한다.

말 없이 통하는 이치를 깨닫는 강천섬

봄꽃이 지고 초록대궐을 이룬 강천섬 메타세쿼이아 길을 걷자. 이 길을 자전거를 타고 신이 나서 달리는 아이와 연인들은 오늘 세상 부러울 것이 없어 보인다.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을 앞에 두고 큰 나무 옆에 앉아 있으면 말 없이도 통하는 이치를 깨닫는다! 인적이 드문 시간, 강천보에 조명이 켜지고 나 홀로 자전거 하이킹을 즐기는 남자를 보았다. 그는 자전거를 타며 꿈속을 여행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이 없는 시간이니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을 BGM으로 켜고 어딘가로 흘러가는 그의 뒷모습은 여주의 이미지 자체였다. 도시 가운데로 강은 흐르고 여전히 어부들은 배를 띄워 물고기를 잡는다. 그들에게는 생업이지만 영월루에서 바라보면 강태공 같은 유유자적한 모습에 미소가 그려진다. 조금만 나서면 세련된 명품 브랜드를 쇼핑할 수 있는 공간도 있으니 여주의 매력은 다채로움이다.

강천의 강은 편안함을 뜻하는 한자어를 쓰는데 처음 그 이름을 지은 사람도, 강천섬에서 여가를 즐기는 수많은 사람도, 강천섬을 처음 찾은 기자도 모두 비슷한 기운을 느낀 모양이다. ‘편안하다’와 ‘편하다’, ‘편리하다’는 모두 한 글자 차이지만 그 뜻은 참 다르다. 셋 중 하나의 상태를 고를 수 있다면 나는 ‘편안’이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안할 수 있으니까. ‘편안’의 영향력은 그만큼 크다. 우연히 ‘강천’을 알고 덜컥 기나긴 인연을 맺은 분이 있다. 여백서원의 전영애 선생님이다. 부자도 아니면서 부자도 엄두 못 낼 엄청난 공간을 만든 사람. 선생님의 고향은 경북 영주인데 조부께서 소수·도산서원장을 지낸 유학자다. 서원이란 조선시대에 선비가 모여서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다. 그 고결한 가치가 현재에도 전승될 수는 없을까. 여백서원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외국인 학자와 예술가들이 편히 와서 공부도 하고 짧고 길게 작업도 하고 가는 여백서원은 너무도 아름답고 완벽한 공간처럼 보인다. 그런데 2주면 완성되는 정자를 1년 7개월이나 걸려 지었단다. 돈이 없어 목수가 여주를 지날 때마다 조금씩 완성해준 것이다. 선생님은 독일문학을 전공하며 유학 때 받은 도움, 자식과 제자들이 받은 도움까지도 마음의 빚으로 저축했다가 여백서원을 통해 무한한 가치로 갚아나가는 것 같다.

여백서원지기 전영애 선생님

현대판 서원으로 부활한 여백서원은 지식의 힘이 내게서 머물지 않고 가깝고 먼 데로 흐르는 열린 공간이다. 입구에는 어린이도서관이 있는데 어린 자매가 사서 역할을 잘 수행하고 선생님에게 인사를 건넨다. 얼마나 기대되는 씨앗인가! 나이가 무색하게 젊고 빛이 나는 선생님의 미소와 여유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알 것 같다. 여백서원은 이용료 없이 후원으로만 운영된다. 선생님의 손길이 거치지 않은 곳이 없는 곳들을 귀한 차 마시듯 음미하며 걸었다. 편안하다.


2편 어라운드 여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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