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 김일의 발리 여행

우리도 디지털 노마드가될 수 있을까

서울을 떠나 발리에서 머문 지 58번째 밤이다. 두 달 전 한국을 떠나와 귀국을 이틀 앞두고 있다. 방갈로 형태의 숙소 천장 여기저기에서 도마뱀과 개구리가 울어대는 통에 깼는데, 다시 잠을 청하려다 실패해 결국 위스키를 한 잔 따라 밖으로 나온 참이다. 여행의 후반부에 들어서며 나중에 다시 발리에 오게 될거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한 번도 안 온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사람은 없다는 곳이 바로 이곳, 발리다.

 

아내는 프리랜서 작가이고, 나는 목공방을 운영하고 있어 우리는 비교적 남들보다 수월하게 두 달의 시간을 확보할 수있었다. 특히 겨울엔 가구를 주문하는 사람도, 목공 교육을 받으러 오는 사람도 드물어 매년 열대지방에서 겨울을 나고 돌아오는 것은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삶의 모습이기도 했다.

두 달 여정의 항공권을 끊은 것 외엔 별 준비 없이 출국일이 다가왔다. 공항으로 가는 동안 태어난 지 겨우 11개 월이 된 아이를 안고 있는 아내에게 틈틈이 카메라를 들이댔다. 발리에 있는 동안은 본업인 가구를 만들 수가 없으니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발리 여행 영상을 올려볼 참이었다.

이번 여행은 우리 부부에게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일종의 실험이기도 했다. 글을 쓰는 아내와 가구를 만들지만, 최근엔 영상을 찍어 편집 하는 것에도 열중해온 나에게 어쩐지 가능해 보이는 도전이었다.

하지만 첫 일주일을 보내면서 우리, 특히 아내는 아이와의 여행이 결코 만만한 게 아니라는 걸 절감하게 됐다.

그곳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매일 기록한다는 것이 사치로 느껴졌다. 그저 낯선 곳에 적응하고, 그곳에서 무사히 아이와 하루를 보내기만 해도 밤마다 녹초가 되었다. 그 후 몇 주가 지나서야 조금씩 발리에 익숙해졌다.

우붓에서 2주 정도를 보낸 뒤 다시 쿠타로 돌아와 한달을 지낼 아담하고 깔끔한 아파트를 구했고, 스쿠터를 빌려 아내와 아이를 태우고 발리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유명한 관광지를 찾아 돌아다니고 서핑을 배우거나 래프팅을 하러 가기도 했지만, 아침에 일어나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동네 산책을 한 뒤, 저녁에는 집 근처 꼬치집에서 간소한 저녁과 맥주를 사와 먹고 잠이 드는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날들도 많았다.

나와 아내, 아이의 얼굴이 새까맣게 변할수록 우리도 발리와 더욱 가까워졌다. 틈이 나는 대로 우리가 계획한 디지털 노마드적 삶도 시도했다. 출발하던 날 공항에 가는 길부터 힘들었던 첫 일주일, 그 뒤 매일의 일상을 성실하게 카메라에 담았고, 아내가 아이를 보는 동안 영상을 편집해 유튜브에 올렸다. 아내 역시 기운이 날 때마다 아이를 내게 맡긴 뒤 집이나 근처 카페를 찾아가 발리에서의 일들을 정리하고 기록했다. 쉽진 않았지만 매일 같이하는 촬영도 어느샌가 익숙해져서 스쿠터를 타는 동안에도, 서핑할 때도, 식당에 갈 때도, 심지어 아이가 아파 병원에 갔을 때도 늘 녹화를 누르는 걸 잊지 않았다.

적도에서 한겨울의 한 달을 채웠을 무렵, 서울에서 마지막으로 올린 원목침대 제작 영상이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며 수익 창출 요건을 통과했다. 발리 영상 때문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좀 더 많은 사람이 영상을 볼 기회가 생겼다. 두 달은 길면서 동시에 짧은 시간이었다. 아이와의 여행은 많은 상황에서 변수로 작용했다.

우리의 실험이 계획하고 기대한 만큼 성공적이었는지 자문한다면 절대적인 성공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도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결코 알 수 없는 삶의 크고 작은 교훈과 다음 여행을 위한 용기를 얻었다. 발리에서 현지인들은 날씨 탓에 거의 걸어 다니지 않고 스쿠터를 이용한다. 한낮에 아기 띠를 메고, 아무도 안 다니는 인도를 아내와 걸으며 나눴던 말로 끝인사를 대신한다.

 

“걸어야만 보이는 게 있거든. 그 자리에 서서 바라봐야만 보이는 게 있거든.”

글쓴이 ‘김일’은 경기도 파주에서 목공방 ‘마히퍼니처스튜디오’를 운영 중이며, 유튜브 채널 ‘서울 보이’를 통해 목공 콘텐츠와 발리 영상을 선보이고 있다.

글·사진 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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