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1막 1장 밀양 대서사시 개봉박두

밀양 1막 1장

밀양 대서사시 개봉박두 

밀양강 절벽 저 높은 데 영남루가 고고하다. 어제는 비가 오더니 오늘은 쨍한 햇살. 동지섣달 꽃 본 듯이날 좀 보라고 외치는 당당한 목소리가 그 안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밀양의 노래를 듣는 밤

헐레벌떡 계단을 뛰어올라 이제 막 오기 시작하는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간발의 차이로 문 안에 선 나와 문 밖에 선 사람이 빠르게 멀어진다. 계단에서 조금 다른 마음을 먹었다면 어땠을까? 한 호흡만 느리게 쉬었어도 그와 나는 함께 같은 길을 걷게 됐을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시간을 쪼개고 분을 다투며, 오지 않은 날을 불안해하던 시간을 뒤로하고 밀양강 앞에 섰다. 가을을 마중한 지가 어제이건만 야속한 계절은 벌써 배웅을 받으려는 듯 걸음이 빠르다. 온 종일 내리던 가을비가 그치고 어둠이 내려앉은 밀양의 밤하늘에 보라색, 푸른색, 노란색 불꽃이 터진다. 영남루와 밀양강을 무대로 ‘2019 가을 밀양강 오딧세이’가 막을 열었다. 아역 출연자들이 자연스럽게 호흡을 맞추며 물의 정령 ‘연’과 호위장군 ‘인’의 운명과 사랑, 밀양의 노래를 부른다.

▲‘2019가을 밀양강 오딧세이’의 화려하고 신비로운 무대

검은색 의복과 가면을 쓴 무리가 기괴하고도 신비로운 춤사 위로 시선을 빼앗는다. 많은 시민 속에 섞여 막이 하나 내릴 때마다 박수를 보냈다. ‘내가 이 시간에 놓이려고 어제와 어제를 애써 보냈구나’ 싶었다. 살아 있는 듯 신비로운 영남루, 공중에 떠오른 달, 검푸른 수면 위의 용, 손끝, 발끝까지 퍼진 배우들의 열연은 오늘의 밀양이 어떠한 모습인지 일깨워줬다. 아쉬운 가을을 배웅하는 데 이만큼 좋은 때와 장소는 없어라.

‘2020 가을 밀양강 오딧세이’에는 당신의 시간도 꼭닿길, 밀양강에 마음을 띄워 보냈다.

▲영남루 앞마당에서 열린 밀양아리랑 토요상설공연

보물 제147호 ‘밀양 영남루(密陽 嶺南樓)’

조선시대 밀양도호부 객사에 속했던 곳으로 손님을 맞거나 휴식을 취하던 곳이다. 고려 공민왕 14년(1365)에 밀양군수 김주(金湊)가 통일신라 때 있었던 영남사라는 절터에 지은 누로, 절 이름을 빌려 영남루라 불렀다. 그 뒤 여러 차례 고치고 전쟁으로 불탄 것을 다시 세웠는데, 지금 건물은 조선 헌종 10년(1844) 밀양부사 이인재가 새로 지은 것이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건물 안쪽 윗부분에서 용 조각으로 장식한 건축 부재를 볼 수 있고 천장은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연등천장이다.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밀양아리랑은 1920년대 항일운동의 거점이었던 만주 에서 ‘독립군아리랑’, ‘광복군아리랑’의 군가로도 불렸다. 힘든 농사를 질 때도, 나라가 위태로웠을 때에도 영남 지역 사람들은 ‘덩덩덕쿵덕’ 세마치장단에 맞춰 씩씩한 기조를 잃지않았다.

밀양아리랑은 ‘사랑’ 노래다. 가만히 읊조리면 이제막 사랑을 시작한 풋풋한 아가씨의 정서가 느껴진다. 사랑에도 갑과 을이 있고, 조금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이 질 수밖에 없다는데, 밀양아리랑의 주인공에게는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다. 제 할 말은 하는 이 당찬 여성은 ‘날 좀 봇쏘! 날 좀 봇쏘!’ 사랑하는 그에게 반말 투의 사설을 과감히 내뱉는다.

보고 싶을 땐 보자고 말하는 것, 너 없이는 못 살겠다 고백하는 것이 왜 지는 것인가? 사랑에는 이기고 지는 것이 없음을 밀양아리랑에서 한 수 배운다.

 

“날 좀 봇쏘! 날 좀 봇쏘! 보고 싶을 땐 보자고 말하자.

너 없이는 못 살겠다 고백하자.”

 

토요일 한낮, 영남루 마당에서 밀양아리랑 상설공연(11월 23일까지 매주 토요일 운영)이 열렸다. 풍류와 시정이 넘치는 영남루를 수식하듯 누각에 서서 이 공연을 관람할 수도 있으니, 21세기 풍류가객이 되어본다. 하얀 한복을 차려입은 배우들이 어깨를 들썩이며 타작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노동이 고되지만 그 안에는 보람과 즐거움도 있으리. 나도 모르게 흥겨움에 빠져들며 뜻을 알 수 없이 반복되는 구절을 따라 불렀다. 어쩌면 밀양 사투리일 수도 있겠다. 밀양을 처음 여행했다면 ‘가이소’라는 인사말이 남다르게 들릴 것이다.

‘안녕히 가세요’를 ‘가이소’라고 하는데 언뜻 차갑게 들리지만 말끝에 느낌표가 아닌 물결이 들어간다고 할까? “가이소~ 밀양에 또 오이소~!” 자꾸 따라 하게 되는 맛이 있다.

 

  • 영남루에서 7.7km 위양지

 

“나뭇잎처럼 작은 새들, 어디선가 나타난 개구리,

발걸음 소리에 놀라 후다닥 날아오른 물오리에게

이 안개는 오히려 다행이겠다.”

 

정상미 사진 이효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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