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름 노트 ‘대만’

섞인다는 것은 내가 가진 것을 잃는다는 것일까? 100년 전에도 100년이 지난 지금도 정답 없는 문제에 골몰하는 대한민국을 떠나 대만(타이완)에 잠시 머물렀다. 마치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대만은 마치 정답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PART1

나의 여름 노트 ‘대만’

 

▲ 타이베이의 암바 호텔의 아침, 오른쪽에 ‘타이베이 101타워’가 보인다.

 

  • 너는 누구니? 대만의 고유함을 만든 시간들

우리는 누군가를 기억할 때 그의 특징을 떠올린다. 성격이나 외형적인 면. 그 사람은 유쾌하다, 스타일이 좋다, 다혈질이다, 온순하다, 목소리가 크다 등등. 상대의 고유한 특징은 강력한 이미지가 되어-상대는 부인할지 몰라도-내게 곧 그 사람 자체가 된다.

<SRT매거진> 8월 호를 끝내자마자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추를 마음에 품고 대만을 갔다. 돌아와 대만을 불러오자니 여러 가지 이미지가 머리와 가슴을 날아다닌다. 대만은 그 어떤 상대보다 다양한 특징을 갖고 있었다.

▲ 타이중 ‘장화선형차고’에서 만난 남매

대만보다 타이완이라는 이름이 누군가에게는 더 익숙할 수도 있을 텐데 기자에게는 대만과 타이완의 어감이 너무도 다르게 느껴진다. 대만은 중국 같고, 타이완은 홍콩 같다면 우스울까?

다녀온 뒤에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대만이 과거 일본과 네덜란드, 청나라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일본은 대만을 50년간 통치(1895~1945)했는데, 35년간 일제강점기를 겪은 우리나라와 비교할 때는 일본에 대한 정서가 참 다르게 와닿는다. 1895년 4월 일본과 청나라는 시모노세키조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일본은 승전 대가로 거액의 배상금과 중국의 영토인 랴오둥반도, 타이완, 펑후섬을 할양받았다. 조선을 사이에 놓고 이뤄진 그들만의 전쟁, 그리고 청나라의 패배라는 결과는 대만과 조선이 일본의 통치를 받아야만 했던 시대로 이어졌다.

▲ 형형색색의 버스가 대만의 밤을 지난다

그러나 미움도 끌어안았던 걸까? 대만은 일본의 조용한 골목길, 동남아시 아의 시끌벅적하고 순박한 야시장 분위기가 혼합된 채 대만의 고유함으로 드러났다.

 

  • 차가운 빙수와 구수한 우롱차로 달래는 대만의 여름

작열하는 태양과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지는 습기가 공존 하는 뜨거운 계절, 잔뜩 뿔이 난 아이를 달래듯 차갑고 달콤한 빙수가 객을 맞이한다. 망고빙수로 유명한 어느 호텔의 빙수 가격을 생각하면 이 가격, 맛, 양이 감사할 뿐이다. 메뉴 판에 적힌 신타이완달러(NT$) 250을 환산하면 우리나라 돈으로 1만 원이 채 안된다. 그렇다고 대만에서 매일같이 빙수를 입에 달고 산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날이 후텁지근하다 보니 식당에 가면 저절로 찬물을 찾게 마련인데 대만에서는 찬물을 내어주는 일이 드물었다. 어느 식당에 가든 물보다 가까운 곳에 우롱차가 있었다. 차가움보다 은근한 따뜻함으로 더위도 속도 달래주는 지혜. 첫맛은 순하고 두 번째는 달콤하고 세 번째는 구수한 우롱차의 묘미에 빠져들었다.

▲ 단수이와 빠리를 잇는 페리

대도시의 높은 빌딩숲을 저마다의 속도로 질주하는 오토바이 행렬과 원색의 버스. 산과 호수로 둘러싸인 원주민의 나라. 어느 지역이든 이름난 성황묘가 있어 낮이든 밤이든 찾아와 향에 불을 붙이고 간절히 소원을 비는 사람들. 이방인이 쳐다보든 이방인이 지나치든 상관없다. 더 나은 내일을 바라는 사람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곳, 대만은 그런 곳이었다.

▲ 향을 태우면 소원이 이뤄지리

 

글·사진 정상미 취재협조 타이완관광청 서울사무소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