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행숙 전통주가

 

담대히 일어나는 그대에게 권하는 술

 

 

당신 앞에 자세가 곧고 아름다운 사람이 서 있다.
싱그러운 미소에 내 안까지 밝아지는 그런 사람이다.
용기가 있다면 말 한마디 걸어볼 텐데 수줍은 ‘나’는 어쩌면 좋은가.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아무리 수줍어도 그냥 지나치지는 못하리라

우연히 ‘미인주가’라는 이름의 술을 알게 됐다. ‘美人酒家’ 한문 타이포그래피로 장식된 패키지가 깔끔하고 고급스러운데다 안에 담긴 약주의 색 또한 오묘하니 시선을 확 사로잡는다. 맛에 대한 평도 하나같이 별이 다섯 개다. 어찌 그냥 지나칠까. 말 한 마디, 아니 백 마디 건네고파 바로 약속 날짜를 잡았다.

경기도 파주로 가는 화창한 금요일, 짙은 녹음을 바라보며 문득 변화를 생각한다. 우리 전통술은 대부분 저온숙성 과정을 거친다. 그 맛이 참된 맛이 되는데 적절한 시간과 때가 드리 워야 한다는 이치렷다. 자의든 타의든 변화할 기회가 왔다면 담담히 맞이하리라.

“사실 저는 술을 못 마셔요.”

최행숙 대표의 고백에 눈이 똥그래졌다. “정말요?” 술을 못 마신다는 것이 술을 싫어하는 것과 같은 말은 아니지만, 그 인연이 퍽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호텔의 F&B 부서에 몸담으며 술도 농사일도 전혀 몰랐던 그녀는 파주 민통선 내에서 인삼 농사를 짓는 남편을 만나 농부의 아내가 되었다. 워낙 이치에 밝고 배우는 것을 즐겨하던 최행숙 대표는 인삼을 이용한 2차 산업을 하고 싶었단다.

“아시다시피 농업도 2차, 3차 산업으로 발전해야지 단순히 인삼 농사만 지어서는 뒤처지잖아요. 그런 이유로 2001년에 농업기술센터에서 인삼을 활용한 가공품을 생산하는 교육을 받았어요. 그때 전통술도 배우게 됐는데 쌀, 누룩, 물로만 빚는 술의 향기가 기가 막히게 좋더라고요. 그 향기가 잊히지 않아서 아, 이거구나 싶었어요.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술 공부를 시작해 양조장 문을 연 것이 2008년이네요.”

지금까지 만나본 모든 대표마다 한결같이 우리 술을 빚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고 말했는데 체격적으로도 훨씬 왜소한 최행숙 대표의 노고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럼에도 그녀는 주경야독을 하는 선비처럼 사업은 사업, 공부는 공부대로 열정을 불태웠다. 서울 서대문구에 수수보리 아카데미가 있다. 경기대학교와 농업기술실용화재단이 공동 설립한 양조 교육기관으로 최행숙 대표는 아카데미가 설립되자마자 전통주 과정을 수료한 1기생이다. 현재는 수수보리 아카데미에서 강사로서 교육을 하는 한편, 양조장에서도 수시로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배움은 변화의 길을 열어준다. 최행숙 전통주가는 그녀가 쓰디쓴 시간을 보낸 만큼 귀한 열매로 되돌아왔다. 원래 대표가 처음 술을 배우게 된 계기는 인삼의 2차 산업이었다. 그러나 현재 미인주가의 술에는 인삼 성분이 들어가지 않는다.

미인주가의 미인은 ‘米人’에서 ‘美人’으로 변화했다. 그 안에는 여전히 쌀 미(米) 자와 인삼(人蔘)의 인(人) 뜻을 내포하고 있으니, 최행숙 전통주가의 역사가 그 이름에 담겨 있다.

 

변화의 길목에서 나의 선택은

“파주 초립골에서 지금의 법원읍으로 양조장을 옮아왔어요. 초립골의 양조장은 지금보다 훨씬 넓고 아름다운 곳이었어요. 당시 만들던 술은 직접 농사지은 6년산 인삼과 찹쌀을 이용한 미인주가 약주와 탁주로 해외 수출까지 앞두고 있을 만큼 큰 관심을 받았지요.

날짜까지 못 잊어요. 2011년 7월 29일, 수해로 공장 하나가 완전히 무너졌어요. 양조장 설비를 신축한 지 6개월 만에 닥친 일이라 충격이 더 컸지요. 그런데 지난 4년간 우리 술을 맛본 분들이 자꾸 전화를 주고 격려를 해주시는 거예요. 더 이상 술을 생산할 수 없을 만큼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졌지만,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어요.

이듬해 2월 양조장을 이전했는데 그 즈음 전통주에 대한 식품위생절차가 더욱 까다로워졌고, 이전보다 젊은 세대까지 포용할 수 있는 미인주가를 만들기로 결정하면서 인삼을 넣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래저래 마음 아픈 순간을 보냈지만 우리 술에 보내주는 큰 사랑을 보면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해요.”

미인주가 약주·탁주에 이어 최행숙 전통주가를 대표하는 제품은 ‘아황주(鴉黃酒)’다. 지난 2018년 ‘아시아태평양 평화번역 국제대회’에서 북측대표단의 저녁 만찬주로 선택되어 주목받은 제품이다.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아황주는 2009년 농촌진흥청의 ‘우리술 복원 프로젝트’를 통해 복원됐다. 당시 시험 양조를 맡은 최행숙 전통주가가 기술이전을 통해 2012년부터 본격적인 제조를 시작했다.

아황주는 멥쌀로 만든 쌀가루에 펄펄 끓는 물을 부어 익반죽, 즉 범벅을 만들고 국내산 밀로 빚은 누룩과 섞어 밑술을 만든다. 덧술의 양이 적기 때문에 발효시간이 짧고 깔끔한 맛이 특징이다. 미인주가 약주·탁주는 밑술과 덧술 모두 찹쌀만 사용하고 범벅이 아닌 구멍떡을 만든다. 덕분에 아황주와도 다른 맛을 보여주는데 끈적임 없이 달지 않고 그윽한 향기가 감돈다.

최행숙 전통주가는 매달 정해진 수량의 술만 제조한다. 그러니 미인주가나 아황주를 맛보려면 제품이 있는지 미리 노크를 하는 것이 좋다. 기자가 방문한 이날도 제품을 만들고 포장하는 손길이 분주했는데 특별히 상견례에 쓰일 제품이란다.

“예로부터 손님이 오시면 집에서 빚은 귀한 술을 대접했지요. 우리 술이 그런 자리에 쓰이니 참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뿌듯하고요. 흥청망청 마시고 취하는 술이 아닌 귀한 자리, 귀한 술로서 우리 술이 바른 주도 문화까지 전파하는 매개체가 되길 바랍니다.”

최행숙 대표는 예순이 넘은 나이가 무색하리만치 여전히 사업도 강의도 쉼이 없다. 다행히도 이제는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으니, 선생님과 제자의 인연을 맺은 부부가 향후 최행숙 전통주가를 이어 나간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우리 술을 배우러 왔다가 모두 힘들다며 부리나케 뛰쳐나간다는데 부명미-임상채 부부가 함께한 시간이 벌써 반년이 지나가고 있다.

스승의 응원과 지원을 통해 앞으로 더욱 발전해나갈 최행숙 전통주가의 모습이 기다려진다.

정상미 사진 이효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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