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걸어보오 정읍

시민을 위한 지식창고가 미술관이 되었다.
문화 감성까지 꽉 채우는 예술 공간으로의 초대.

 

소금장수, 하드보드에 유채, 34.5×25cm, 1956년, 박수근作

여행자의 발걸음을 이끈 건 박수근의 <소금장수>가 그려진 <100년의 기다림-한국근현대명화展> 포스터였다. 서울의 내로라하는 미술관에서도 쉽게 만날 수 없는 작품들을 직접볼 수 있는 기회. 심지어 ‘100년의 기다림’이라는 제목까지 달았으니 도저히 가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서울에서 정읍까지는 SRT를 타고 1시간 20여 분, 한국 근현대 명화를 보기 위한 봄나들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4월이면 벚꽃이 만개하는 정읍천을 지나, 나지막한 아양산 아래에 자리 잡은 미술관. 원래 이곳은 도서관이었다. 1990년부터 시민들의 지식을 채우는 역할을 수행하다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2015년 10월에 전북 최초의 시립미술관으로 새롭게 출발했는데, 주변으로 국악원과 예술회관, 정읍사문화공원 등이 자리해 하나의 작은 예술 단지처럼 보인다.

“계절마다 총 4번의 전시회를 열어요. 올해는 <100년의 기다림-한국근현대명화展>으로 시작해 5월부터 가족사랑기획전 <어린이 전시>를 준비 중이고, 이어서 정읍 출신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는 지역 예술가 지원 릴레이 전시와 개관 4주년 특별 전시가 이어지죠.”

강미미 학예연구사는 정읍시립미술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리 크지 않은 규모지만 3개의 전시실과 야외 전시 공간, 뮤지엄 교육실, 예술창고, 수장고 등을 갖췄고, 매해 새로운 전시를 기획·진행하며 지역 주민의 예술적 관심과 소양이 높아지고 있음을 몸소 느끼기 때문이다. 거리와 상관 없이 멀리서부터 찾아오는 관람객의 열정에도 감탄하곤 한다. 특히 이번 전시는 전국에서 매일 평균 350여 명이 꾸준히 방문해 2019년 3월 중순 기준 총 방문자 수가 1만 7000명을 넘어섰으니 가히 성공적이다.

고양이, 테라코타, 45.2×16.2×43cm, 1963년, 권진규作

<100년의 기다림-한국근현대명화展>은 무려 1년을 넘게 준비한 전시회다. 원래는 정읍시립미술관 개관 4주년 특별 전시로 기획했지만 2019~2020년 정읍 방문의 해를 맞아 예정 보다 앞당겨 1월부터 선보이게 되었다. 전시는 조선이 서양미 술을 수용하기 시작한 1900년 이후부터 100여 년의 시간을 망라하며,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백남준, 나혜석, 천경자등 총 49명 작가의 작품 70점을 소개한다.

청담스님, 한지에 채색, 215×348cm, 1983년, 박생광作

“몇몇 작가는 아쉽게도 한 작품씩만 걸려 있어요. 이중섭 작가도 그중 한 명인데, 원래 소 그림과 미공개 작품까지 여러 점을 전시하고 싶었지만 섭외가 원활하지 않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3월 초까지만 전시하기로 했던 <사슴과 두어린이>를 전시 마지막 날까지 걸 수 있게 되어 만족해요.”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을 섭외하기 위해 공을 들인 건 기본이고, 섭외에 실패하면 대체할 작품을 찾기 위해 동분 서주해야 했다. 작품을 돋보이게 만들 원색의 전시장 벽면도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원하는 컬러로 겨우 맞췄고, 낮은 층고를 보완할 방법도 다방면으로 모색했다. 정읍시립미 술관은 도서관이었던지라 층고가 여느 미술관보다 낮은데, 이는 대작 전시의 큰 걸림돌이었다. 진채화의 거장 박생광의 <청담스님>의 경우 500호 이상의 대작이라 전시 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졌을 정도. 다행히도 병풍으로 작업되어 이동이 용이해 겨우 전시장에 걸 수 있었다.

사슴과 두 어린이, 종이에 펜과 유채, 14.5×15.8cm, 연도미상, 이중섭作

작가의 노고만 알았지 작품 하나하나에 깃든 기획자의 정성은 몰랐다. 누구의 작품인지 들여다보고 감상하며 과거 100 년 속에 존재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상상해본다. 누군가는 뜨거웠고, 누군가는 절박했고, 누군가는 화려했던 시간들. 그 안에서 꽃피운 예술이 여전히 우리를 전율케 한다는 사실에 또 한 번 감탄하고 만다.

산월, 마포에 유채, 132×162.5cm, 1962년, 김환기作

 

<100년의 기다림-한국근현대명화展>은 총 3개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 1전시실

‘교과서 속 우리미술 : 격동의 역사 속 빛나는 예술혼의 탄생’.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까지 혼돈의 시기 속 100년을 되돌아보며 구본웅, 김환기, 나혜석, 박수근, 오지호, 이중섭 등 우리나라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작가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 2전시실

주제는 ‘한국화를 넘어 한국화로-전통의 계승과 혁신’으로 박생광, 천경자, 이응노, 김기창 등 전통 산수화의 발전과 현대적 계승을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 3전시실

광범위한 표현 기술과 다채로운 방법론을 구현한 ‘새로운 표현의 모색-동시대 미술의 다양성’이다.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을 비롯해 정읍을 대표하는 설치 작가 전수천, 윤명로, 김흥수 등의 작품으로 꾸며졌다. 이 외에 뮤지엄 교육실과 미술관 라운지에서 ‘내가 만드는 명화’, ‘함께 만드는 명화’ 등의 체험행사도 진행한다.

|4월 20일까지(월요일 휴관)|무료|전시설명 11:00, 14:00|전북 정읍시 시기4길 7|063-539-6420|

 

정읍에서 놓치지 마세요

[ 큐레이터’s PICK ]

  • 1 벚꽃 흩날리는 정읍천

정읍 시내를 가로지르는 정읍천은 수령 40년 넘는 왕벚 나무 수백 그루가 봄마다 탐스러운 벚꽃을 피워 정읍 9경으로 꼽힌다. 정주교에서 정동교로 이르는 1.2km 구간이 가장 걷기 좋고, 3월 30일부터 4월 3일까지 정읍천변 어린이축구장 일원에서 정읍벚꽃축제와 정읍예술제가 열린다. 4월 중순까지는 야간 경관조명이 설치되어 벚꽃과 어우러지는 컬러풀한 야경도 감상할 수 있다.

 

  • 2 천년 사랑의 정읍사문화공원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가요 ‘정읍사(井邑詞)’를 주제로 한공원. 조선 성종시대 <악학궤범>에 한글로 기록된 백제 가요 5곡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곡으로 백제시대 때 행상을 나간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담았다. 실제 공원에는 2.5m 높이의 백제 여인 망부석과 정읍사노래비가 세워져 있고, 주변으로 사당과 정읍시립미술관, 정읍사예술회관, 정읍사국악원, 샘골약수터 등이 자리한다.

|전북 정읍시 시기동 81-2|063-530-7429|

 

  • 3 아양촌해물칼국수

자타공인 정읍 맛집. 미역을 갈아 넣은 면에 새우, 주꾸미, 홍합 등을 더해 만든 해물칼국수가 메인 메뉴. 콩나물과 배추가 듬뿍 들어가 국물이 아주 시원하다. 두툼한 녹두해물전은 갖은 야채와 주꾸 미, 새우, 옥수수콘, 맛살 등이 어우러진 퓨전 스타일로 매콤한 고추장아찌를 올려 먹으면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아삭한 겉절이와 무김치, 볶음김치 역시 전라도 손맛 인정!

|10:30~21:00|해물칼국수 8000원, 녹두해물전 1만5000원|전북 정읍시 송산1길 25|063-532-3828|

 

  • 4 카페 하마다

지난해 7월에 오픈한 카페. 엘살바도르, 예가체프, 안티구아 등 직접 로스팅한 원두로 커피를 만들고, 신선한 딸기, 키위, 자몽 등을 재료로 한 주스, 스무디 등의 메뉴가 있다. 햇살 들어오는 통유리창에 널찍한 실내 곳곳에는 지역 작가들의 미술작품을 전시한다. 야외 테이블에서는 푸른 대나무숲을 바라보며 음료를 즐길 수 있고, 햇살 좋은 날에는 옥상에 올라가 정읍사문화공원을 조망하기 좋다.

|10:30~21:00|커피 4000~5000원, 핸드드립 5500원, 생과일주스 6000원|전북 정읍시 정읍사로 534|063-535-9522|

 

 

김정원 사진 오진민 작품사진제공 정읍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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