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 덕산양조장

어찌할 도리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무언가 앞에서 ‘운명인가 봐’라는 말을 쓰곤 한다. 두 손에쥔 것을 내려놓아야 새것을 잡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운명을 겪으며 한번 더 나아갈 기회를 얻는다. 쌀의 고장에서 백년에 가까운 양조장이 새주인을 만났다. 사람도 공간도 운명이다. 다시 도약할 때다.

 

 

  • ‘살아서는 진천에 사는 게 좋다’고요

예로부터 충북 진천을 생거진천(生居鎭川)으로 불렀다. ‘살아서는 진천에 사는 게 좋다’ 는 뜻이다.

지금까지 이 말이 전해지는 데는 누구나 ‘그렇지, 그래’ 하는 인정이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차령산맥에서 뻗은 연봉들 가운데 분지 형태로 자리한 진천은 벼농사에 그만인 환경을 갖추었다. 다른 곳에 비해 햇볕을 골고루 오래 받을 수 있어 쌀이 잘 여물었고, 낮과 밤의 일교차가 커 쌀 조직을 치밀하게 했다.

조선시대에도 수확량이 많아 쌀의 고장으로 불렸으니 더 말해 무엇하리. ‘식사는 하셨소?’라는 안부를 인사로 주고받던 시절, 진천은 생거진천으로 널리 불렸다.

이러한 쌀의 고장에 우리 술을 빚는 양조장이 없을 수 없다. ‘진천덕산양조장’(이하 덕산양조장)은 1930년부터 지금까지 소문난 술맛을 내고 문화유산으로서도 가치가 있는 곳이다.

1대 창업주인 이장범 대표는 백두산에서 벌목한 전나무와 삼나무로 목조건물을 세웠다. 건물은 80년 세월이 무색할 만큼 곧고 단단함을 자랑한다. 오히려 몇 군데 덧댄 현재의 목재들이 쉽게 금이 가고 휘어져 그시절에 들인 정성이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덕산양조장은 2003년 등록문화재 제58호로 지정되었다. 이방희 대표는 양조장의 환기를 위해 높은 창을 만들고 벽체와 천장에 왕겨를 채우는 등 목조건물 이상의 가치가 있기에 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었다고 덧붙인다.

“덕산양조장은 양조장을 위한 양조장입니다. 서쪽으로 문을 냈고, 단층건물이 지만 천장이 2층과 맞먹을 만큼 높아요. 양조장을 향해 불어오는 강바람과 산바람이 벽을 타고 천장을 통해 잘 순환되어 나갈 수 있도록 한 거죠. 황토로 벽을 바르고 천장에는 1m 이상의 왕겨를 쌓아서 습기와 온도를 적절히 조절해줍니다. 지대가 높아서 여름 장마에도 걱정이 없고요. 들어오면서 보았겠지만 입구에 측백나무를 심었습니다. 덕분에 목조건물에 큰 위협이 되는 개미 같은 벌레가 없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세심하게 분석하고 설계한 건물이에요.”

 

  • 덕산양조장은 내 운명

시종일관 진지하고 또렷한 음성으로 덕산양조장의 우수함을 들려주는 이방희 대표는 1대부터 3대 까지 명맥을 이어왔던 덕산양조장과 오랜 세월 연이 닿아 있던 사람이다. 몇 년 전 경영악화에 놓인 양조장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그는 양조장을 인수하기에 이르렀다. 해오던 사업도 있었기에 마냥 쉽지만은 않은 선택이었다. 이방희 대표는 10년, 20년을 애사심으로 함께한 직원들과 함께 전통을 지키며 현대적인 기술을 더해 덕산양조장을 다시 일으키고 있다.

과거에는 사람이 일일이 막걸리를 술체에 걸러 병에 주입했다. 똑같은 크기로 걸러지지 않다 보니 유통기 한이 짧을 수밖에 없고 시간이 지나면 큰 입자는 상해서 막걸리에서 군내가 났다. 어르신 중에는 이군내 나는 막걸리를 찾는 분도 있다지만 젊은 층에서는 손사래를 치는 맛이라고.

이방희 대표는 가장 먼저 주입실로 기자를 안내했다. 기계를 통해 균일한 입자로 걸러진 막걸리가 여러 단계를 거쳐 빠르게 주입까지 이른다. 이러한 설비 덕분에 보통 하루에 400상자(8000병)를 생산하고 있다. 이방희 대표는 원래 양조장의 기계 설비를 직접 설계·제작하는 경영인으로 덕산양조장과 그로 인해 인연을 맺었다.

 

“양조장 기계 설비를 하려면 술을 어떻게 빚는지 알아야 합니다. 설비 자체가 술 빚는 과정을 대신하는 것이니까요. 기계 설비를 이용한다고 해서 전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우리 술을 접할 수 있게 해주죠. 종갓집에는 대대로 이어오는 씨간장이 있어서 그 집만의 맛을 만들어내죠. 그것처럼 덕산양조장에는 씨주모(술의 어미란 뜻)가 있습니다.

잘 발효된 밑술을 한 바가지씩 퍼다 고유의 술맛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인데, 1930년부터 지금까지 이 작업은 한 번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술을 대량생산하 지만 누룩을 직접 만들어 쓰는 것도 고집합니다. 여기에는 특별한 한 가지 비법이 추가되 는데요, 천장의 왕겨가 품고 있던 천연 균이 떨어져 담기는 거예요. 그 어디에도 없는 덕산양조장 술맛의 비밀이죠.”

 

  • 이 술맛은 혼자서 지켜내지 못해요

겨울에도 여름에도 적절한 기온을 유지해 서늘한 양조장에서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한 제국실에 들어섰다. 이곳이 이방희 대표가 말한 누룩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갓 쪄내 포슬포슬한 고두밥을 밭고 랑과 이랑처럼 만들어 식힌 다음 누룩곰팡이의 배양을 위해 종균이 잘 섞이도록 손으로 일일이 퍼내어 흩뿌린다. 24시간이 지나면 자연 균이 생겨 카스텔라처럼 부드러워진다고.

이어서 평소에는문 열릴 일이 거의 없는 발효실을 안내받았다. 마치 불 위에 놓인 냄비처럼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가득한데 알고 보니 술이 발효되는 소리란다. 막걸리 효모가 고두밥을 먹고 이런 소리를 내면서 발효된 다니, 정말 생(生)막걸리다. 이렇게 살아 있는 술을 먹으면 만성 변비도 한 방에 해결된다고.

취재 후에는 인근 식당에 들렀는데 어르신들이 덕산막걸리를 주고받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광복, 전쟁, 굴곡진 시대를 인내하며 흐른 사람의 생, 그 세월의 벗이 됐을 양조장의 존재도 새삼 위대하게 닿는다.

“덕산양조장은 절대 개인의 것이 아니에요. 이 역사적인 공간이 어느 한순간에 위기에 놓인 모습을 보면서 모두가 지켜나가야 하는 곳임을 알았어요. 주민들이 혹은 군, 시가 나서서 이곳을 사단법인화하여 함께 가꿔나갔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양조장을 하면서 ‘이거 해서 큰돈을 벌어야겠다’라고 생각하는 분은 거의 없을 거예요. 보시는 것처럼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어가니까요. 80년을 버텨온 덕산양조장이 앞으로 백 년 후에도 그 명맥을 이으려면 사심 없는 마음으로 운영해야 해요.”

전국에는 덕산양조장이라는 같은 상호의 양조장이 몇 있다. 진천의 덕산양조장도 중간에 ‘세왕주조’로 명칭을 변경해 주소를 찾으려고 하면 ‘여기가 거긴가, 이곳이 맞나?’ 할 때가 있다. 이방희 대표가 운영하며 옛 이름을 찾아 현재는 ‘진천덕산양조 주식회사’가 정확한 명칭이니 참고하시길.

또 하나, 덕산양조장 하면 허영만 화백의 <식객>에서 ‘할아버지의 금고’ 편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도 유명 하다. 실제로 사무실에는 창업주가 남긴 오래된 금고가 있다. 이방희 대표도 그 안을 보지 못했다니 더욱 궁금증을 자아낸다. 어쩌면 그대로 열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름지기 궁금한 그 시작이 좋아지는 때 아니던가.

 

  • 진천덕산양조 주식회사

충북 진천군 덕산면 초금로 712
043-535-3567
www.sulbom.kr

 

정상미 사진 문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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