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비 장인을 만나다

실과 바늘로 세상을 엮는다

 

 

snqlwkd6

실과 바늘로 세상을 누비다
흔히 누비 하면 퀼트(quilt)를 떠올린다. 겉감과 안감 사이에 솜을 넣고 홈질하여 맞붙이는 바느질 기법 중 하나라고 말이다. 그러나 중요무형문화재 제107호 김해자 누비장의 생각은 다르다.
“전 세계의 규방 여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퀼트’라고 하는데 우리는 왜 ‘누비’라고 했을까. 누비는 말 그대로 ‘엮어낸다’는 뜻입니다. 흩어진 것들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지요. 또 ‘세상을 누비다’라고도 하잖아요? 누비는 실과 바늘로 세상을 한 손아귀에 엮어내는 엄청난 철학입니다.”
누비는 간격에 따라 5cm 내외의 넓은 드믄누비, 0.5cm 내외의 좁은 잔누비(세누비), 드믄누비와 잔누비 사이로 추정되는 중누비로 나뉜다. 솜의 두께에 따라 오목누비와 납작누비로 나누기도 하고, 재봉법에 따라 솜누비, 겹누비, 홑누비로 나누기도 한다. 통째로 물세척을 해도 변형이 없고, 따뜻하기도 하여 조선시대까지 생활 전반에 매우 보편적으로 활용했다.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솜씨
현재 누비장은 김해자 선생 단 한 명뿐. 1996년 보유자로 인정받은 이후 지금까지 유일하다. 그 연유를 물으니, 누비의 맥이 100여 년 동안 끊어져 있었기 때문이란다. 보유자가 뭔지도 몰랐고, 장인이 될 생각으로 버텨온 것도 아닌데 어느새 40년이 흘러 있었다고.
천직이란 생각도 안 했다. 그냥 인연이 닿아서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대한제국 황실의 침방나인이던 수덕사 선복스님과 그의 제자 황신경 선생에게서 전통승복을 배웠고, 이윽고 누비의 매력에 빠져 전국 박물관을 돌아다니며 독학을 시작했다. 박물관이 김해자 누비장의 스승이었던 셈이다. 그러다 1992년, 단국대 석주선 박사가 보관 중이던 유물 114호인 누비옷 ‘옆액주름포’를 제17회 전승공예대전에서 완벽히 재현해내면서 국무총리상을 거머쥔다.
가지런한 누비선이 나오려면 바느질 전에 초크나 다림질로 선을 잡아주어야 한다. 간격도 좁은 데다 일정해야 하니 보통 노동이 아니다. 그러다 김해자 선생이 발견한 것이 바로 ‘올 튀기기’. 올 하나를 살짝 긁어서 완전히 빼지 않고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면 천에 저절로 선이 생긴다. 그야말로 유레카를 외칠 법한 상황. 더욱 놀라운 것은, 현미경으로 유물을 살펴보니 이미 선조들이 쓰던 방법이었다는 사실이다.
“아이고, 허탈해라. 이 쉬운 방법을 몰라 100년 전통이 끊어지고. 나는 또 몇 년을 매달려 고민하고. 이 ‘올 튀기기’를 발견하고 나서 한 일주일 동안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니까요!”

 

snqlwkd8
5세 여아용 당의
snqlwkd9
‘양장’을 콘셉트로 만든 작품. 일상생활에 걸쳐도 무리가 없게끔 고안했다. 그 가볍고 따뜻함은 입어본 사람만이 안다고.

 

공들인 옷 한 벌의 가치

그 옛날, 옷은 종교와 신앙의 대상이었다. 천집 만집을 돌아다니며 한 땀씩 얻어 만든 옷은 총알도 피해간다지 않던가. 아기가 태어나면 어머니가 손수 누빔옷을 지어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것이 우리의 정서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자 한다면 스스로 내가 입는 옷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세요. 유행 따라 변덕 부린 옷은 심상을 어지럽힙니다. 함의 없이 바느질한 옷, 정성스레 공들인 옷 한 벌의 가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김해자누비공방
주소 경주 식혜골길 33 문의 054-775-2631 웹사이트 www.nubi107.com
가는 방법 수서역 출발 기준으로 신경주역까지 약 2시간 내외. 신경주역에서 공방까지 차로 약 20분 거리(12km).

 

 

 

이현화 사진 임익순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