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뭘 해도 ‘돼지’ 경기도 이천 돼지박물관

깨닫고 난 뒤 달라지는 것은 얼마나 힘든가. 모두가 가지 않는 길 앞에 선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가. 그의 뒤에 늘 돼지가 있고, 기다리고 있어서 안심이다. 인간의 삶과 돼지의 생, 돼지박물관에서 이다지도 묵직한 생각에 사로잡힐 줄은 몰랐다.

 

 

아이러니 대백과사전 2월 호

차창 밖으로 트럭에 실린 돼지들을 보았다. 너풀너풀한 큰 귀에 투실투실한 엉덩이에는 까만 변이 묻어 있다. 앉는 것을 모르는지 앉을 수 없는 것인지, 달리는 차에서 목적지도 모른 채서 있는 돼지들을 보며 안락한 승용차에 기댄 나는 돼지를 실은 차가 점으로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았다. ‘저 돼지들은 죽으러 가겠지? 어쩌면 태어나서 저만치 자랄 때까지 오늘이 처음 외출일지 모르는데 그 길이 죽으러 가는 길이라니. 그것도 나처럼 고기 먹는 사람 때문이라면! 나는 정말 나쁜 사람이다. 그런데 채식주의자는 평생 못될 것 같아.’ 북 치고 장구 치며 돼지에게 가닿지도 않을 감정이 일렁일렁. <SRT 매거진> 2월 호는 ‘돼지’가 특집이라 기자마다 돼지 관련 기획물을 써야 했다. 그걸 모아보니 이번 2월 호는 참 잔인하고, 우습고, 재밌고, 사랑스러운 아이러니 대백과사전인 것이다. 반려돼지를 키우는 사람들을 수소문했고, 소문난 돼지고기 맛집을 찾았고, 행복한 돼지 세상을 꿈꾸는 돼지테마파크를 방문했다. 이미 큰 제목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기자는 경기도 이천 끝자락에 위치한 돼지박물관(돼지보러오면 돼지)을 방문했다. 가기 전에는 별생각 없었는데,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묵직한 무언가가 가슴에 담긴 것을 깨달았다.

먹는 돼지, 살아 있는 돼지

당연히 돼지 냄새가 날 줄 알았다. 냄새라기보다 악취에 가까운 분뇨 냄새가 코를 찌를 줄 알았는데 이것도 잘못된 생각이었다. 사실 돼지는 깨끗한 환경만 제공되면 스스로 똥과 오줌을 가린다. 밥을 먹는 곳과 배설하는 곳을 구분하고, 지능지수가 70이 넘을 정도로 똑똑하다. 이런 돼지가 평생을 좁은 우리에 갇혀 오직 식용으로만 사육되는 것은 분명 ‘나’의 잘못이다.
돼지박물관 초입에 들어서면 바로 방목장이 있다. 실내에서 서로 포개져있던 녀석들 중 몇몇이 간식을 주는 줄 알고 재빠른 걸음으로 뛰어나온다. 목살 때문에 고개를 들어올리기 힘들다는 돼지가 애써 사람 얼굴을 쳐다본다. 그러나 간식도 없이 “어머, 예뻐!”만 연발하는 기자를 보고 이내 수돗가로 몸을 돌린다. 기다란 수돗가에서 삼삼오오 물을 마시는 돼지들의 뒷모습이 너무 깨끗하고 사랑스럽다. 여기 돼지들은 이렇게 살고, 도로에서 봤던 그 돼지들은 어찌 그렇게밖에 살 수 없단 말인가. 올해로 7년 3개월째 돼지박물관을 운영하는 이종영 대표에게서 이런 부분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물음과 답으로 그와 돼지, 공간에 대한 설명을 전한다.

기자 아이들이 돼지박물관에 들어오면서 짓궂은 말을 하더라고요. “와, 삼겹살 맛있겠다!” 물론 어른들이야 굳이 그런 말을 내뱉진 않겠지만, 사실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긴 하죠. 돼지박물관 자체에 서도 돼지퍼레이드, 소시지 만들기 체험 등이 이뤄지고요.

대표 돼지박물관, 돼지테마파크, 부르는 이름은 다르지만 이곳은 쉽게 말해 돼지를 주제로 교육을 하는 농장이에요. 주요 대상이 어린이, 청소년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그중 하나가 ‘돼지가 있는 교실’입니다. 체험학습을 온어린이들은 전 세계의 돼지와 관련한 수집품을 모아놓은 박물관, 돼지의 생애에 대해 배우는 교육관, 또 돼지들의 장기 자랑 공연 등을 관람해요. 직접 돼지를 보고, 만져보고, 안아보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돼지에게 주는 편지와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가져요. 그 속에서 아이들의 변화된 마음이 읽히는데, ‘돼지는 위대하고 고마운 동물’로 여겨요. 언제나 먹을 수 있는 맛있는 고기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존중 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죠.

강원도와 미국에서 서울까지 온 옥수수가 같은 옥수수일까요? 오직 식용 목적으로만 길러지는 돼지와 살아 있는 동안 행복한 돼지는 분명 다릅니다. 어른은 물론, 특히 아이들에게 동물이든 식물이든 생명체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 경건한 마음’을 심어주고 싶어요. 그게 이 공간을 운영해나가는 주된 목적이에요. 

기자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왔는데 돼지박물관의 프로그램이나 각각의 공간이 알차서 놀랐어요. 카페에 걸린 미술품도 감각적이고, 돼지 관련 전시품도 어마어마합니다. 운영비도 만만치 않게 들겠지만 애정 없이는 안 되는 일일 텐데, 돼지에 대한 그 마음은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대표 젊은 시절 양돈산업에 종사했어요. 돼지의 인공수정, 사후관리, 기술이전, 초음파 임신진단 시스템을 도입했었죠. 체중이 300kg 정도 나가는 씨돼지 100마리를 사육했는데, 어느 날 돼지 한 마리가 직원을 공격하는 일이 있었어요. 아마 직원이 돼지를 귀찮게 한 모양이에요. 어찌됐든 사람이 다쳤잖아요. 속상한 마음에 그날 그 돼지에게 가서 ‘너 이제 팔아먹을 거야’라고 했더니 얘가 밥을 안 먹더라고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제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기분이참 묘했어요.
‘내가 이 녀석들을 돈 벌어주는 도구로만 생각했구나, 언제 까지 양돈산업을 할까, 내가 돼지들에게 무얼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양돈산업 뒤에 ‘문화’를 붙여야겠다 다짐했어요. 아무래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돼지와 관련한 캐릭터에도 관심이 많아졌어요. 사업차 방문한 19개국에서 한두 개씩 사들인 인형만 6000점 이상인데, 그중 1300점이 박물관에 있고요. 국내 신진 작가를 발굴해서 참신한 작품들을 따로 전시하기도 하죠.

돼지가 대체 뭐라고?

한때 사람이 싫어서 돼지에게만 파묻혀 지냈다는 이종영 대표는 이제 돼지로 인해 늘 사람을 만나고, 그들을 깊이 바라 보는 시선을 갖게 되었다. 오랜 시간 병석에 있던 남자, 말 못할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초등학생, 누군가의 보호가 절실한 약자들, 불량이라는 낙인을 달고 지낸 청소년. 돼지가 행복한 이곳에서 그들은 웃음을 찾고, 고민을 해결했으며, 미물로 여겨지는 돼지를 돌보며 자신도 치유받곤 했다. 돼지가 대체 뭐라고?

방목장에서 만났던 돼지들을 보러 공연장에 앉았다. 장기를 안 보여줘도 대표님이 밥 잘 주실 텐데 어쩌면 이렇게 공연을 잘하는지 연신 두 손을 맞대고 ‘짝짝’, 응원의 목소리를 보탰다. 공연 초기부터 함께한 8살 꿀순 이는 올해 은퇴를 한단다. 지금까지 함께하는 유일한 현역 선수로 그의 장기는 공을 입으로(!) 드리블하여 골대에 넣는 것. 골대를 거꾸로 놓으면 공을 뒤로 가져와 골인시킨다. 본의 아니게 경기를 스포일러를 했으니 귀한 정보도 드리겠다. 바로 라이언이 알려준 복권 번호다.
작고 빠른 라이언은 숫자가 적힌 수많은 공 중에서 느낌적인 느낌으로 공 하나씩만 선별해 사육사에게 가져다준다. 황금돼지해의 기운으로 가져온 번호를 공개하니 참고하시길.
<29, 17, 19, 10, 30. 32> 돼지는 원래 이런 동물이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깨끗하고 영리하며 낯선 사람을 경계하느라 스스로 포개진 돼지 무리를, 기분이 좋으면 좌우로 꼬리를 흔드는 살아 있는 돼지를 두고 본 적은 처음이다. 얼마 전 읽은 책의 한 대목이 스친다.
며칠 전 쉬는 날에는 광화문으로 나갔다. 마침 점심시간이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나왔다. 한 시간쯤 산책을 하다 깨달았다. 내가 걷는 내내 인간 이외의 다른 생명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그곳에는 오직 인간만이 있었다. 점심시간이 끝날 때쯤 한시간 전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나왔다. 배가 불러 있었 다. 간혹 오른손에 이쑤시개를 들고 이를 쑤시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배 속엔 무엇이 차 있는 걸까?

 

돼지는 우리가 아는 그 이상이다

15년 전 양돈산업문화를 준비하고, 7년 이상을 그 속에서 달려온 이종영 대표가 돼지로 인해 달라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참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인식의 전환이란 참 무섭고 무겁다. 차라리 돼지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걸 모를걸 그랬나? 아니, 어른이 된 이상 어찌 늘 피하고 살겠나. 앞장 서지는 못할망정 숨지는 말아야지. ‘돼지가 있는 교실’이자 ‘교육관’에서 돼지의 전생애에 대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인간 생활에 가장 밀접한 돼지’에 관한 패널을 보고 ‘돼지가 돈육 외에 187개 제품으로 사용’됨을 알았다. 이는 네덜란드의 예술가이자 디자이너인 크리스틴 마인더스마(Christien Meindertsma)가 2006년 발행한 <PIG 05049>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책은 총 7개 챕터로 가죽, 뼈, 고기, 내장 기관, 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녀는 네덜란드의 한 상업 농장에서 임의로 채택한 돼지를 3년간 추적하여 돼지 한 마리가 우리가 흔히 아는 젤라틴부터 컨디 셔너, 담배, 심장 판막, 심지어 탄약회사의 총탄에 사용된다는 것도 알아냈다. 제목의 숫자는 돼지 귀에 걸려 있던 표식으로 책 등에 장식되어 있다. 그렇다. 돼지는 우리가 아는 그 이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돼지가 6개월이면 120kg에 달해 도축장으로 보내진다고 한다. 15년을 살 수 있는데, 1년도 못 누린 채 도축되는 것이다. 이종영 대표는 모두가 몰라서, 혹은 알아도 으레 재사용했던 돼지 인공수정용 주사를 오래전 일회용으로 전면 교체했다. 미국의 유전자 센터를 견학 후 2000만 원을 들여 보유 돼지들에게 호흡 기증후군 예방접종을 했다. 그리고 ‘양돈산업문화’를 꿈꿨다. 깨닫고 난 뒤 달라지는 것은 얼마나 힘든가. 모두가 가지 않는 길 앞에 선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가. 그의 뒤에 늘 돼지가 있고, 기다리고 있어서 안심이다. 뜻을 함께하는 소상 공인과 더불어 더욱 깊어지는 공간이 되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돼지보러오면돼지(Pig Museum)
경기 이천시 율면 임오산로 372번길 129-7
031-641-7540 www.pigpark.co.kr 대인 7000원, 소인 6000원, 24개월 미만 무료입장 돼지공연&퍼레이드 오전 11시, 오후 1시·3시·5시 (매주 월요일 휴관)

 

돼지박물관 인근에서 무얼 먹나?

  • 이종영 대표 추천 ‘송학쌀밥집’

‘Since 1999’를 큼지막이 적어놓은 간판이 눈에 띈다. 서까래를 그대로 드러낸 실내가 밥맛을 돋운다. 전국에서 맛있기로 소문난 이천쌀로 지은 돌솥밥은 숭늉을 부어 마지막 밥풀 하나까지 맛있게 먹는다. 반찬이 짜지 않아서 좋은데, 특히 친정어머니표 간장으로 조리한 게장이 최고! 기자와 포토그래퍼 모두 사랑하는 가족이 생각나 포장까지 해왔다.

| 이천쌀밥기본정식 1만2000원 간장게장 (1마리) 2만 원 | 경기 이천시 설성면 서동대로 8207| 031-641-6005 | 매주 월요일 휴무| 

 

  • ‘라우트 커피’


송학쌀밥집에서 차로 10분 거리, 장호원시외버스 터미널 인근의 카페이다. 갑자기 쳐들어간 기자에 놀라 가게 자랑은 많이 못하셨지만, 주문한 카페 라테를 보고 고개를 끄덕. 따뜻한 라테는 우유거 품이 8할인데, 섬세한 스킬로 내어주신 라테 아트에 반했다. 원두는 산미 없는 고소한 맛을 고집하 고, 에이드에는 생과일을 듬뿍 올려 보기도 먹기도 좋다.

| 카페라테 4000원 자몽에이드 6000원 | 경기 이천시 장호원읍 장감로 10 | 070-4210-3255 | 

 

  • ‘스마일명품찹쌀꽈배기’

이름이 길지만 왜 이렇게 찰떡같이 외우고 있는 지! 장호원시외버스터미널 바로 앞에 있는 노란 간판은 그냥 지나치기 힘든데, 기자가 꽈배기를 사는 동안 좁은 가게에 손님들이 줄줄이 들어섰 다. 찹쌀을 아낌없이 넣어 만든다는 꽈배기와 동그란 찹쌀도넛은 기름에 튀겼는데도 느끼하지 않고, 식어도 쫄깃했다. 꽈배기는 거기서 거기라는 속마음 사과합니다.

|각 500원 | 경기 이천시 장호원읍 샘재로 157 | 031-641-3588 |

 

정상미 사진 오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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