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에서 만난 겨울왕국, 아이슬란드

살을 에는 추위가 있었고, 마음을 녹이는 사람들의 따뜻함이 있었다. 710km를 걸었고 676km를 히치하이크했다. 아이슬란드 전체를 순환하는 단 하나의 도로, 1번국도(Ring Road)를 그렇게 67일간 여행했다. 세상 끝에서 만난 겨울왕국. 그곳에서 나는 순간순간을 살았다. 그리고 차가움과 따뜻함을 함께 만났다.

 

걷는다는 것은 가장 느린 속도로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일이다. 여행의 속도는 오직 내 두 발과 마음에 달려 있고, 나는 여행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길 위의 시간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것은.

언젠가 한 번쯤 내 안의 모든 것을 불태워보고 싶었다. 불가능한 일에도 도전해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내가 이룬 일로 인해 감동해보고 싶었다. 아이슬란드, 그곳에 내가 바라던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수도 레이캬비크를 시작으로 비크, 에이일스타 디르, 아퀴레이리를 거쳐 다시 레이캬비크로 돌아왔다. 1월에 시작된 여행은 3월이 되어서야 끝났다. 아이슬란드는 무서운 눈보라도 보여주었지만, 아름다운 오로라도 보여주었다. 태어나 처음 마주하는 오로라와 빙하는 내가 가진 언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하루에 적게는 15km, 많게는 30km를 걸었다. 그렇게 710km. 중력과 30kg의 배낭은 어깨를 짓눌렀고 발바닥은 물집이 마를 날이 없었다. 눈과 비에 젖고, 돌풍에 밀려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때론 눈물을 쏟아내며 걸어 나갔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먹구름 속에서 한 조각 파란 하늘을 찾는 법을 배웠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 법. 희망은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발견해내야 하는 것이었다.

 

하루에 적게는 2~3번,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는 수십 번. 힘들게 걷고 있는 내 옆으로 차가 가까이 다가왔다. 창문이 열리고 온기와 함께 퍼져 나오는 목소리. “이봐, 너 괜찮아? 힘들면 태워줄게!” 그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내가 도움을 바라지 않아도 먼저 다가왔다. 괜찮은지를 물었고, 혹시 필요한 것은 없는지를 물었다. 홀로 하는 여행, 하지만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여행 6일째에는 차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우리는 잠시 이야기를 나눴고, 그중 폴이라는 녀석이 나에게 안전한 여행을 기원한다며 노래를 한 곡 불러주었다. 길 위에서 언 손으로 기타를 퉁기며 그가 부른 노래의 제 목은 ‘Snow Flower’였다. 레이캬비크에서 15km 정도 떨어진 산 중턱에서 처음 맞이한 아이슬란드의 밤은 18시간 동안 이어졌다. 외진 도로 옆 폐가 안이었고 기온은 영하 20℃였다. 여름용 텐트를 펼치고 차가운 침낭 속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지옥 같은 첫날 밤을 시작으로 밤마다 살기 위해 잠자리를 구걸했다. 폐가를 발견하는 날은 운 좋은 날이었고, 화장실에서 자는 것도 망설이지 않았다. 물론 수많은 사람의 도움도 있었다. 아이슬란드 북부 블란다오스 근처 버려진 농장에서 잘 준비를 마쳤을 무렵, 누군가 다가왔다. 혹시 들어오면 안 되는 곳에 들어온 걸까?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건네자 돌아온 말은 “아니야, 우리는 너를 구조하러 온 거야. 너만 괜찮다면 우리 집에 가지 않을래? 여기보다는 따뜻할 거 같은데.” 난 기꺼이 구조되어 농장에서 조금 떨어진 그들의 집으로 갔고, 주말 만찬에도 초대되는 행운을 누렸다. 67일간의 여행. 겨울왕국에 사는 따뜻한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무사히 마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슬란드를 짧게 여행하는 사람은 운이 없으면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오로라다.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시기는 이르면 8월 중순부터 이듬해 4월 말까지. 시간 대는 자정부터 2시까지가 가장 좋다고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는 날씨. 별이 빛날 정도로 맑은 하늘에 구름과 바람이 없어야 한다.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래서 오로라 관측예보 앱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오로라 지수가 높은 날, 여행자들은 차 안에서 오로라가 뜨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오로라가 뜨면 차를 타고 빛이 춤추는 곳을 향해 가까이 다가간다. 그것을 ‘오로라 헌팅’이라 불렀다. 물론 차도 앱도 없던 나는 오직 행운에 기대어 오로라를 만났다. 67일이라는 시간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직접 본 오로라 중에서는 비크에서 바라본 오로라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불빛과 떨어진 곳을 찾느라 마을에서 가장 외진 공동묘지까지 갔기 때문이다. 덕분에 공포와 아름다움으로 전율할 수 있었다.

 

가끔 사람들이 물었다. 모험 같은 여행 후에 달 라진 것은 무엇이냐고. 처음엔 고난과 시련을 이겨낸 경험이 나를 지탱한다고 생각했다. ‘한겨울 에 아이슬란드를 걸어서 여행하는 일보다 힘든 일이 있을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주는 힘도 시간이 지날 수록 조금씩 옅어졌다. 시간이 지날 수록 오히려 더 진해지는 건 그곳 사람들에게 나눠받은 온기였다. 사람은 추억만으로 살 수 없다지만, 그런 온기를 추억해 미소 짓는 날들이 있다. 그리고 이제 내가 그런 온기를 나 눌 수 있는 여행자가 되기를 바란다.

  글·사진 박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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