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느릿 전주 여행

느림의 여유를 주는 곳, 전주 한옥 마을

 

깨끗한 자연 속에서 전통문화를 보존하며 살아가는 아날로그 감성의 도시. 2010년 11월, 국제슬로시티연맹 이사회에서 슬로시티로 인증받은 전주 한옥마을이 5년마다 이루어지는 까다로운 재평가를 지난해 4월에 통과했다. 이제는 기존 영역을 넘어 전주시 전역까지 슬로시티에 포함되었다. 천천히, 천천히, 걷고 보고 느끼고 싶은 공간이 더 커진 셈이다. 달팽이처럼 느려도 좋다. 이곳에서만큼은. 지도를 한 장 들고 구석구석 골목과 골목을 누빈다. 걸음을 재촉할 필요가 없다. 아무리 게으름을 피워도 걷다 보면 다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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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벽당과 금재고택
전주8경 중 하나로 꼽히는 한벽청연(寒碧晴煙), 그 중심에는 한벽당이 있다. 승암산 기슭, 전주천이 펼쳐지는 절벽 위에 터를 잡은 팔작지붕의 누각. 1404년에 월당 최담이 별장으로 지은 건물로 규모는 작지만 아름다움은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누각에 앉으면 머리 위로 고운 빛깔 단청이 쏟아져 내리고, 정면으로는 탁 트인 시야 아래로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른다. 과거 문인들이 시를 읊으며 풍류를 즐겼다는 곳, 그 이유가 단박에 이해된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일제 강점기에 허물어질 위기에 놓인다. 철로 개설을 이유로 들었지만 한벽당의 정기를 끊기 위함이었으리라. 최담의 후손인 금재 최병심이 강하게 저항해 한벽당은 지켜냈지만 그 아래로 한벽굴이 뚫리고 전라선이 깔리면서 전주최씨종대(全州崔氏宗垈) 터는 사라지고 말았다. 현재 한벽당 앞 대로를 건너면 금재고택 터가 전주전통문화관이라는 이름으로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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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향교와 남안재
사계절 내내 고즈넉한 자태를 뽐내는 전주향교. 간재 전우의 제자인 호남 삼재가 활동하던 이곳은 공자를 비롯한 다섯 성인의 위패를 모시는 대성전과 학생들을 가르치던 명륜당 등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전우는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친일파를 처형해달라는 상소를 올릴 만큼 임금에게 직언과 충언을 마다하지 않은 선비 중의 선비였다. 1910년 나라가 일본에 의해 주권을 잃고 병합되자 낙향해 계화도와 신시도에 머물며 강학활동을 펼쳤고, 그의 제자들은 한옥마을에 모여 유학을 계승했다. 향교 뒤편으로는 고재 이병은이 후학을 양성하고 유생들과 함께 항일 투쟁을 했던 남안재와 고재의 영정을 모신 남양사가 있다. 금재 최병심 역시 옥류정사와 염수당에서, 유재 송기면도 김제의 요교정사에서 유학을 가르치며 독립의 뜻을 모았다. 후손들의 역할도 컸다. 이병은의 아들 이도형은 향교의 위패와 장판각 ‘완판본’ 목판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쳤고, 송기면의 아들인 서예가 강암 송성용은 일제 단발령에 항거해 머리를 기르고 창씨개명을 거부한 유학자였다. 이들이 지키고자 했던 문화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완판본문화관과 강암서예관을 찾아가면 좋다.

제대로 즐기려면?
선비체험길 1시간 코스 전주향교 > 남안재 > 오목대 > 이목대 > 창암암각서, 월당 최담유허비> 한벽당 > 완판본문화관 > 전주 동헌
선비체험길 2시간 코스 전주최씨종대 > 오목대 > 이목대 > 창암암각서, 월당 최담유허비> 한벽당 > 전주전통문화관(금재고택 터) > 완판본문화관 > 강암서예관 > 양사재 > 남안재 >
전주 동헌 > 전주향교

 

전우 초상, 1911년, 종이에 채색, 65.5×4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전우 초상, 1911년, 종이에 채색, 65.5×4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선비들이 지켜낸 조선왕조실록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시는 경기전 내부에는 작은 사고(史庫)가 하나 있다. 조선 전기에 실록을 보관했던 장소다. 당시 손실될 위험에 대비해 한양의 춘추관과 충주, 성주, 전주 등 총 네 곳의 사고에 각각 1부씩 보관하고 있었다. 임진왜란의 참화 속에서 다른 실록들은 모두 잿더미로 변했고, 전주사고의 실록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이를 근거로 태조에서 명종까지 13대에 걸친 실록을 다시 4부씩 인쇄, 오늘날의 <조선왕조실록>에 이르게 된다. 이는 모두 경기전 참봉 오희길, 태인 지방 출신의 손홍록과 안의, 그리고 이들을 도운 지역 선비들의 노고 덕분이었다. 전주로 왜군들이 몰려오자 죽음을 무릅쓰고 경기전 내에 있던 태조 어진과 실록을 정읍 내장산 은적암을 거쳐 용굴암, 비래암으로 옮겼고,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 속에서 1년 넘게 불침번을 서가며 소중한 역사 자료를 지켜낸 것이다. 전주사고본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만약 나라를 생각하는 선비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조선의 흥미진진한 역사는 아마 과거에 묻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을 소재로 한 소설, 조선 후기, 19×30cm 필사본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을 소재로 한 소설, <임진록> 조선 후기, 19×30cm 필사본

 

 

김정원 사진 손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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