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다로 ‘손맛’을 찾아 떠난 사람들

삭풍과 진눈깨비가 제아무리 위력을 발휘해도 겨울 낚시에 빠진 사람들의 열기까지 꺾을 순 없었다.

그들이 시종일관 주시한 건 하늘이 아닌 바다였다.

 

흐린 일요일이다. 예고대로 눈발이 날리고 있지만 인천 남항 부두 주차장에는 차들이 빼곡하다. 모두 뜨뜻한 방바닥에 드러누워 TV를 보는 대신, 거친 바람 속에서 즐기는 바다낚시를 선택한 ‘도전자’들이다. 잠시 후 ‘해피호’라는 기분 좋은 이름을 단 2층 선박 한 척이 부두로 들어온다.

양손 가득 무거운 짐을 진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리고, 또한 무리의 사람들이 낚싯대와 아이스박스를 들고 배에 오른다. 좋은 자리를 선점하려는 듯 뱃머리에서 잠시 자리 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지기도 하지만 혼란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어디에 앉을까. 빠른 눈으로 배를 스캔해보지만 남은 자리라고는 후미쪽밖에 없다. 우럭은 물론 광어까지 낚을 수 있다는 말에 혹해 구입한 만능 루어 낚싯대를 깃발처럼 꽂고 출항을 기다린다. 만능이 아니어도 좋으니 우럭만이 라도 제대로 낚아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옆 자리에는 서울에서 온 전기기사 최민석 씨가 동행한 친구와 나란히 앉았다.

<삼시세끼>, <도시어부> 같은 TV 속 피싱 장면에 자석처럼 이끌려 이곳까지 온 그는 경력 6개월의 ‘새내기’ 낚시꾼이다. “도시에선 할 수 있는 게 뻔하잖아요. 뭔가 새로운 걸 찾고 있던 터에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고 ‘저거다!’ 생각했어요. 이후 주말은 낚시를 하며 보내고 있어요. 훨씬 생산적일 뿐 아니라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돼요.”

 

우럭과 노래미, 망둑어의 잔치

그와 담소를 나누는 사이, 해피호가 육중한 몸을 사뿐히 움직인다. 아까는 몰랐는데 어림잡아 40~50명은 될 것같은 사람들이 배 곳곳에 흩어져 있다. 20분쯤 왔을까.

배는 하늘을 덮고도 남을 만큼 거대한 구조물인 인천대교 아래에 정박한다. 공항행 리무진에 앉아 이 대교를 건너는 사람들은 다리 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짐작이나 할까. 바다 건너 저 멀리에서는 ‘천송이 바위’가 우리를 무심히 지켜본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뛰어내리려던 천송이를 도민준이 막은 절벽 바위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뚜뚜~” 귀가 먹먹할 정도로 큰 신호음이 울린다. 낚시를 시작해도 좋다는 입수 신호이자 망망대해를 유유히 헤엄 치고 있을 물고기들에게 던지는 선전포고다. 조금 전까지 봉돌을 달고 미끼를 고르던 사람들이 일제히 낚싯대를 던진다. 오징어나 갯지렁이, 베트남산 냉동 주꾸미가 주 미끼 메뉴인 가운데, 미꾸라지를 미끼로 쓰는 부르주아 낚시 꾼들도 있다. 어쨌거나 허공에 던져진 낚싯대가 그리는 포물선들은 멋진 추상화를 연출한다. 장관이다.

“광어는 기대하지 마세요. 여기선 우럭이나 노래미가 잡힐 테니까. 25cm가 넘는 우럭이 잡히면 운이 좋은 거라고요.”

과도한 기대로 내가 실망을 안고 갈까 염려한 최민석 씨가 귀띔한다. 낚싯대를 드리운 지 10분이나 됐을까.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 옆자리의 낚싯대 끝이 투두둑 소리를 내더니 제법 묵직하게 휜다. 최민석 씨가 심호흡을 하더니 낚싯대의 탄성을 유지하며 빠르게 릴을 감는다.

짜릿함이 있는 취미, 혹은 도전하는 삶 그 자체

드디어 뭍으로 올라온 녀석은 맑은 눈의 우럭이다. 부러움도 잠시, 기동도 없던 내 낚싯대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입질이 느껴진다. 서두르지 않고 일부러 한 박자 기다렸다가 살짝 낚싯대를 드는 정도로 ‘챔질’을 한다. 무게가 느껴진 순간 재빨리 릴을 감는다. 역시 포동포동 살이 오른 우럭이다. 낚싯대를 세워 줄을 손으로 잡고 수면으로 떠오른 우럭을 들어올린다. 묘한 성취감이 등골을 짜릿하게 타고 흐른다. 우럭을 바늘에서 떼어낸 뒤 목줄과 기둥줄에 꼬임이나 손상된 부분이 없는지 확인하고 다시 미끼를 달아 내린다. 우리는 선장이 수시로 알려주는 수중 지형 정보에 귀를 기울인다. 이를 듣고 민첩하게 줄을 감거나 풀어주어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채비가 수중 장애물에 걸려버리거나 수중에 떠 있는 상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운’이라고 위안을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이는 분야 중 하나가 낚시다. 누군가에게 낚시는 취미지만 누군가에게는 삶 그 자체다. 노년을 쿠바의 바다에서 보낸 헤밍웨이는 어느 쪽이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옆에는 아빠와 함께 바다낚시를 온 조그마한 미래의 도시 어부가 앉아 있다. 몇 살이냐고 물으니 열두살이라고 답한다. 부천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민제에게 낚시는 ‘아빠와 함께 보내는 주말’이다. 2년째 낚시를 하고 있는 민제의 수조에는 벌써 서너 마리의 우럭이 담겨 있다. 분발해야겠 다. 초등학생한테 질 순 없는 노릇이다. 수조에 넣은 우럭의 숨이 점점 희미해질 무렵, 또 다른 입질이 온다. 움직임이 제법 리드미컬해서 잔뜩 긴장하지만 미끼를 문 건 우럭이 아니라 노래미다. 그렇게 우럭 한 마리와 노래미 한 마리를 더 낚고 완연한 강태공 모드가 되어 낚시에 빠져들 무렵, 눈도 그치고 맑던 하늘이 조금씩 어두워진다. 곧이어 눈인지 비인지 모를 무언가가 바람과 함께 사정없이 얼굴을 휘갈긴다. 진눈깨비다. 진눈깨비한테 억울하게 따귀를 맞으면서도 ‘꾼’들은 미동조차 없다. 이들이 주시하는 건 하늘이 아닌 오직 ‘바다’다. 배는 위치와 방향을 바꾸며 인천대교 주변을 몇 번이고 훑는다. 3시간 정도가 흐르고, 수조는 우럭과 노래미, 간간이 보이는 망둑어로 가득 찬다. 오늘은 조황이 좋은 편이다. 어선이라면 ‘만선’이다.

 

또 다시 바다로 이끄는 겨울바다의 매력

잡힌 우럭들 중 일부는 주방으로 보내진다. 주방이라고 해봐야 반 평 남짓한 자투리 공간이지만, 이래봬도 이 공간의 용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2명의 아주머니가 주방에서 도마와 칼을 들고 나와 노련한 손놀림으로 회를 치기 시작한다. 배에서 피를 빼고 지느러미, 아가미, 내장 순으로 제 거한 다음 바닷물로 깨끗이 세척하는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갑옷처럼 이들을 덮고 있던 비늘이 살점에서 떨어져 나가고 스티로폼 도시락에는 미각을 자극하는 분홍 속살들만 남았다. “저걸 보니 소주가 땡기누만.” 누군가 먹음직스러운 우럭 회를 보고 소주를 연상하며 입맛을 다신다.

하지만 선상에서 소주는 금지다. 볼을 사정없이 때린 칼바람, 진눈깨비와 사투를 벌인 나머지 공복을 느낀 낚시꾼 두 명이 갓 썰어 칼칼한 냄새를 풍기는 청양고추, 마늘, 쌈장과 함께 우럭 회를 가져간다. 바다 위에서, 바다를 보며 먹는 활어회의 맛은 얼마나 기가 막힐까. 집으로 가져갈 우럭 손질, 혹은 바다 위의 만찬이 끝나갈 무렵 낚시를 마감하고 입수를 중단하라는 신호음이 울린다. 배도 방향을 틀어 다시 인천 남항으로 향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양손 가득 오늘의 수확물을 들고 만선의 기쁨(?) 을 만끽해야 할 사람들의 얼굴에 외려 허탈한 느낌이 아른거린다. 부두가 가까워오자 최민석 씨가 오늘 이름값을 톡톡히 한 해피호를 배경으로 마치 바닷속에 애인이라도 두고 온양 한탄한다.

“추워도 낚시가 주는 손맛을 잊지 못하니까 다시 나오게 돼요. 겨울 바다만의 매력이 있거든요. 아… 이렇게 돌아 가면 또 한 주를 어떻게 기다리나.”

하루를 행복하려면 술을 마시고, 평생을 행복하려면 낚시를 하라고 했다. 매운탕을 끓이겠다고 서더리까지 챙기며 다음 주를 기약하는 ‘도시 어부’들의 등에서 씩씩하게 또한 주를 살아갈 힘을 읽는다.

임지영 사진 손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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